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성옥 (문단 편집) === [[1999년]] === [youtube(vBR6sU5PaQg)] >저는 기자들을 통해 세계면전에 웨친[* 외친의 문화어 표기.]것처럼 아버지 장군님의 그리운 영상을 안고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려는 일념으로 백공오리[* 105리.]를 달려 세계패권을 쥐게 되였습니다. >---- >귀국 직후, 평양 공항에서 가진 인터뷰 일부.[* [[https://www.youtube.com/watch?v=vBR6sU5PaQg&t=418s|출처]]] >조선의 기상을 만방에 떨친 세계 《마라손녀왕》 정성옥선수가 지금 해주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자기의 고향속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 >해주에서 열린 환영식 방송 때 아나운서의 말 일부.[* [[https://youtu.be/rWMlE5jHrBk|출처]]] 1999 세계선수권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마라톤 은메달리스트인 김창옥의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하였다. 2시간 26분 59초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남북한을 통틀어 첫메달을 획득했다.[* 남북한 통틀어 두번째 메달은 경보 김현섭이 기록했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다.]이는 현재까지 북한의 유일한 세계선수권 메달 기록이기도 하다. 막판까지 선두 다툼을 했던 일본의 이치하시 하리는 불과 3초 뒤진 기록으로 2위를 기록했다. 이때 그녀는 우승보다 그 소감으로 특히나 주목을 받았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우승이었던지라 당시 우승소감을 통역해 줄 사람이 없어 주최측도 곤혹을 겪고 있었는데 마침 현장에서 취재를 하던 대한민국의 원로 스포츠기자 조동표 씨가 통역을 자청해 기자회견이 원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나중에 2003년에 제주도에서 열린 민족평화축전에서 조동표 기자와 재회해 북한산 술을 선물로 주며 은혜에 보답했다.] '''“결승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고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고 말하자, [[김정일]]은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상금을 받은 북한 선수들이 이를 모두 당에 바치도록 하는 전례를 깨뜨리고 세계선수권 우승 상금인 5만 달러를 정성옥 개인이 쓰도록 허가했다. 이외에도 그녀가 김정일로부터 받은 혜택들은 다음과 같다. 1. 북한 운동선수 최초로 [[공화국영웅]]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다.[* 북한 운동선수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레슬링선수 김일도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지 못했다. 한번은 결승에서 남한의 김종신을 꺾었고, 다른 한번은 북한의 철천지 원수국가 미국 땅에 인공기를 휘날렸는데도 말이다.] 2.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벤츠 S클래스 S550]]을 선물받았다. 3. 평양 [[보통강구역]]의 48평짜리 37층 아파트에 거주하였다. 4. 정성옥 세계제패 기념주화까지 발행하였다.[* 쉽게 말하면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를 제외하고 유일무이하게 신격화되고 있는 인물이다.] 5.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보선되었다. 일단 정성옥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것 자체는 확실한데, 정확히 언제 대의원이 되었는지가 불분명하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정성옥이 있긴 한데, 1986년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90년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정성옥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대백과사전에 나오면 정성옥은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고 되어 있는데,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정성옥이 있긴 하지만 문제는 이 선거는 정성옥이 아시안 게임에서 이겨서 공화국영웅이 되기 전에 치러진 선거였다. 이후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도 정성옥이 당선되었는데, 이전부터 대의원을 한 정성옥인지 이 정성옥인지 불분명하다. 이후 고향인 해주에서도 환영 행사가 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