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신분석학 (문단 편집) === 비평 이론 === 비평에 정신분석을 활용하는 것은 거의 [[클리셰]]와 같은 것이 되어서 [[비평가]]라면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을 까기 위해서 정신분석 비평 이론을 가져올 정도다. 즉,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 체계가 지향하는 기본적인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 이건 프로이트의 이론을 대체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헤겔]]이나 [[임마누엘 칸트|칸트]]의 비평 이론을 거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데[* 헤겔이나 칸트에서 곧바로 이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독일 관념론의 철학적 체계를 문화현상에 대입해 비평했던 체계에 [[20세기]]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발상의 전환을 일으킨 발견이나 이론들이 인용되어왔는데, 정신분석학은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활용되어 왔던 것], 개인의 심리에 대입하기에는 상당히 거칠게 보일 수 있는 정신분석학을 집단이나 사회에 적용시키면 나름대로 괜찮은 설명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정신분석학에서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권력의 작동으로, 어머니라고 하는 것을 개별적 삶을 향유하는 것이라고 환원시키는 것 등이 이들 비평의 특징이다. 즉 개별적인 [[모티프]]를 총체적인 모티프로 추상화하는 것. 계속해서 이야기하면 개인의 무의식을 [[오이디푸스]] 삼각관계의 아버지-아이-어머니에서 권력-개체-자유라는 공식으로 치환을 했을 때의 효과는 이전까지의 비평의 고리타분함이나 전문성, 난잡함에서 벗어난 명료함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 전환은 그전까지 전문성에 치우쳐져 있었던 비평을 대중문화에 대한 비평으로 이끌어올 수 있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 관념론은 일반적으로 총체적인 것을 먼저 파악하고 그로부터 자신을 주체화하는 구조를 가지는데, 이렇게 현실을 총체성으로 인식하면서 그에 맞춰 스스로의 주체성을 만들어내는 논리를 [[낭만주의]]라고 한다. 이 낭만주의적 사고는 개별적인 주체성을 결정짓는 논리들을 판단하는 것을 우선시하는데, [[카를 마르크스]] 이전에는 이런 논리들을 명료한 단어로 이끌어오기가 어려웠다. 마르크스를 거치면서 그것이 가능해졌지만, 문제는 마르크스의 이론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다는 것. 즉 섬세한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나 사안에 대해서 정치적 주체화를 강조했던 [[마르크스주의]]는 해석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확장하고 그로부터 강박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치화라는 뚜렷한 목표점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정신분석 이론은 그전까지 사회에 대한 비평이라면 빠질 수가 없었던 마르크스의 과도한 주체화 논리에 제동을 걸게 되었던 것. 마르크스의 이론을 빌려 비유를 하자면 하부구조의 상부구조에 대한 지배력만을 놓고 이를 변형시키는 것을 과제라고 보았기 때문에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지나치게 교조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즉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에 대해 새로운 논리를 제시한 마르크스 자신이 내세운 이론이 변증법이 중지되어 교착상태에 있었던 것인데, 정신분석학을 이 사이에 도입함으로써 다시금 인간의 삶을 이루고 있는 현실의 제반 조건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논리적인 매개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물론적 관점에서 보는 '물질성'이 되었고, 이것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지만 인간은 의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은 이를 분석할 수 있는 혁신적인 관점의 전환점을 보여주었던 것. 사실 정신분석학이 나오기 이전에도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현실의 유물론적 구조를 파악하고자 했던 비평가들이나 철학자들은 존재했다. [[발터 베냐민]]이 대표적인데, 정신분석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다 뿐이지 그 접근법은 고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시대 상황을 물질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분석했다. 다만 그런 용어를 가지지 못해 개념에 단락이 많고, 상당 부분을 직감에 의존하려고 했다. 프로이트가 원장면이라고 불렀던 것을 베냐민은 변증법적 이미지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유사한 부분들은 많았지만 이를 일반화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정신분석 비평 이론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분석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형태를 취한다. 이를테면 개인이 꿈을 꾸듯 집단은 꿈을 꾸고, 집단이 꾸는 꿈은 그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감각에 기인한다. 이 감각을 재현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보았던 헤겔의 관점에 맞추어, 집단이라는 대중의 꿈은 곧 대중 문화인 것이다. [[대중문화]]를 그 집단이 꾸고 있는 꿈이라고 해석함으로써 그 집단의 총체적인 방향성과 상태를 진단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는 프로이트의 문명에 대한 비평[*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자 자기의 이론을 활용해 문명이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는 것이기도 했다. 즉 정신분석학은 원래부터 개체의 정신보다 총체적인 정신의 흐름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는 것. 이렇게 정신분석을 통해 개인이 권력 앞에서 반응하는 모습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총체적인 환원은 독일 관념론의 전통에서 기인하고 있고, 이를 가장 잘 활용했던 철학자로 헤겔과 칸트가 있기 때문에 헤겔과 칸트를 거쳐서 활용하게 된다. 보통 이런 비평들은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활용해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쳐서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가져와 썰을 풀어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마르크스의 정치적인 부분을 뺀 [[변증법적 유물론]]까지 끌어온다면 굉장히 복잡해지지만 보통은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 일단 추산과 해석이 어렵기 때문이고, 글로 써놔도 글이 난해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비평을 하고 있는 비평가가 바로 프레드릭 제임슨.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독일 관념론에 대한 이해가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정신분석학의 기본 용어와 개념들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러다 보니 정작 정신분석학에서 개별적으로 보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견이 없거나 있더라도 사안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심리학계에서 정신분석학을 근거가 없고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할 때 이들 비평가들은 이에 대해 "그건 당신이 권력의 작동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전혀 딴소리를 하게 되는 것. 최근에는 비평 이론만이 아니라 문화의 형태와 발전양상을 파악하는 문화 이론에서도 광범위하게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을 차용해서 쓰고 있는데, 사실 협의로보면 정신이란 개체의 정신이지만 광의로 보면 정신이 '''군체'''의 정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여기에 어떤 사안에 대한 실효성을 가지는 비평이 곧 그것 전체에 대한 이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말이기도 하다.] 다만 그런 이유로 군체의 정신으로부터 개체의 정신의 상황을 파악하는 구조를 가진 [[융]]의 [[분석심리학]]은 그다지 환영받고 있지 못하는 추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