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우성 (문단 편집) == 1994년 데뷔와 작품 활동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우성리즈.gif|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2248915a88fd6d62f8cd1cf30204fcfe.gif|width=100%]]}}} || || 영화 [[비트(영화)|비트]]의 정우성. 소위 '''[[리즈 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비트 풀악셀.gif|width=100%]]}}} || || 영화 [[비트(영화)|비트]][* (1997년 작, 만화 원작 - 글: 박하, 그림: '''[[허영만]]''')]에서 [[혼다 CB 시리즈|혼다 CBR 600F3]]을 최대 속력으로 타면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뻗는 장면 || 커피숍에서 알바하던 시절, 업계 사람에게 캐스팅되어 모델 일을 시작하고 그렇게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절친 이정재와 연예계 입문 테크가 같다. 그리고 나중에 [[무릎팍도사]]를 통해 이 시기에 호스트바 영입 제안을 받은 적 있다고 밝혔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학업과 연기를 위해 경기상고를 중퇴[* 이로 인해 학력미달로 군면제를 받았다.]하고 모델 일과 알바를 겸업하는 중, [[오리온(기업)|오리온]]의 [[센스민트]] CF를 통해 처음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고,[* 이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곡이 바로 같은 해에 충격적인 마스크로 데뷔한 가수 박진영의 불세출의 명곡 '날 떠나지마'였다. 이 당시 정우성이란 배우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박진영 역시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CF만 본 사람들은 정우성이 날 떠나지마를 부른 박진영인 줄 알았다는 웃지 못할 비화도 있었다.]이후 우월한 마스크와 기럭지로 주말 예능에 간간이 모습을 비추기도 하면서[* 주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같은 프로그램이다. 저 당시엔 날고 기는 톱스타도 예능에 나와서 웃겨야 하는 의무감이 있었는데 조금 떴다는 신인들은 대다수 예능프로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올리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혹은 소속사가 있는 경우 소속사의 압박에 원치않게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 업계에서의 인지도가 상승했다. 1994년 [[영화]] '[[구미호(동음이의어)#s-2|구미호]]'를 통해 깜짝 데뷔했다.[* 그 전에 드라마 '[[폴리스(드라마)|폴리스]]' OST에 '눈 감고 볼 수 밖에'로 가수 데뷔(?)한 적이 있는데, 당시 소속사의 제의였다고 한다.] 이 때의 연기는 '''자신이 봐도 못 봐주겠다'''고 할 정도. 만만치 않은 [[고소영]]의 발연기까지 겹쳐서 관객은 공포에 떨었다. 서울관객 174,707명으로 흥행은 그다지 하지 못 했다. 뒤를 이어 [[허영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SBS]] 미니시리즈 [[아스팔트 사나이]]에서 강동준([[이병헌]], 원작에서는 이강토)의 동생 동석으로 등장, 딱 그 나이와 외모에 맞는 반항적인 모습에 주목받는 신인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땐 [[최민수]]가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로 터프한 이미지를 완전히 구축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로, [[최민수]]의 뒤를 이을 배우로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이정재]]가 거론되었으나 이정재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후 [[방위병]]으로 입대하는 바람에 바로 정우성으로 이어져 오게 된다. 그러나... 1996년 [[심은하]]와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본투킬>이 연기력의 악평과 겹쳐서, 서울관객 132,262명으로 흥행에 대실패한다. 같은 해 드라마 [[1.5]]는 멋있기만한 팬시상품의 나열이라는 악평과 시청률이 1.5%가 될 것 같다는 우려를 안고도 초반에 20%가 넘는 시청률을 보였으나 결국 30~40대 주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 다행히도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20% 내외로 그럭저럭 체면 치례는 했다.] 이후 한동안 드라마 출연을 하지 않았다. 1997년 영화 <모텔선인장>은 평단과 관객의 악평 속에 흥행에 참패했다. [[고소영]]과 1990년대 청소년들의 로망이 된 '[[비트(영화)|비트]]'와 절친 이정재를 만나게 해 준 '[[태양은 없다]]'를 찍으며 오랜만에 흥행에 성공한다. 비트와 관련한 일화로는 1994년 주간만화잡지 영 챔프에 먼저 연재되던 원작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1995년 당시 설문 조사가 있었는데, 주인공 '이 민' 역으로 어느 청춘 스타가 어울리겠냐는 물음에 정우성이 1위를 차지한 것. 2위는 이정재였다. 이후 1996년 크랭크인하면서 주인공은 정우성이 되었다. 영화 '[[비트(영화)|비트]]'는 1997년 5월에 개봉하여 20여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전국적으로는 100만여 명의 관객 수를기록하며 당시 시점에서는 청춘 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했다. 극장보다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렌탈 순위에 지속적으로 랭크됐고 1980년대 [[영웅본색]], [[첩혈쌍웅]]처럼 [[1990년대]] 시절의 10대 남성들의 로망과 판타지를 자극했다. 1999년 또 다시 [[고소영]]과 함께한 영화 '[[러브#s-4|러브]]'는 서울 관객 145,242명으로 흥행에 참패한다. 다행히 [[유령(1999)|유령]]은 [[최민수]]의 호연에 힘입어 347,965명의 관객으로 선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