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운찬 (문단 편집) === 교수생활 === 학위를 받은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조교수 생활을 잠깐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꾸준히 강의했다.[* 이 시기 제자였던 유종일 교수 썰에 의하면, 서울대 운동권이었던 자신을 전담하는 교수가 정운찬이었는데, 의외로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찮아하지 않고 니들 말에 동의하지만 최소한 학점 관리는 하라고 충고해줬다고 한다.] 2002년에는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경제학적으론 스승인 [[조순]]과 마찬가지로 [[케인지언]]으로 분류된다.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와는 상반되는 성향. 신문기고를 통해 자주 재벌개혁을 부르짖었다. 덕분에 "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민교협)에도 참여하여 '진보 성향을 가졌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이후 [[MB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내며[* 당시 [[친이]]계가 차기 대권주자로 박근혜 대항마로 키우려고 섭외한 나름 거물급 인사였다.] 본인의 정치 성향은 본인의 학문적 성향과는 대조적으로 중도~중도 우파라는 평가가 많다.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에 따르면 KCI급 논문은 9편, SSCI급 논문은 1편으로 일각에서 주장한 것에 비하면 연구 성과가 꽤 있는 편이다. 또한 대한민국 학부 수준의 경제학은 그의 스승인 [[조순]]과 더불어 그에게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술할 거시경제론의 초판부터 5판까지의 저자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판본 또한 그의 제자인 [[김영식]] 교수와 공저하는 등 학부 레벨의 경제학도들은 대부분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정운찬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학자로서의 성취도는 거시경제론이라는 전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 하나만으로도 높다고 평가가 가능한 수준. 제자이자 [[한림법학원]] 강사 [[황종휴]]에 따르면 학부시절 수업에서는 처음 10-15분간은 거시경제와 관련된 시사적인 이야기를 한 뒤에 교과서 내용은 본인이 알려주지 않고 학생 1명을 시켜 해당 진도의 내용을 설명하게 한 뒤에 본인이 그 설명에 대해 피드백하는 발표식 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이 때 황종휴 강사는 정운찬 교수가 휴강이 잦고 불성실하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총장 시절에도 거시경제론 교과서 개정에 직접 책임지고 했다고 한다.[* 당시 황종휴 강사 본인이 개정 작업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직계 스승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안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아래의 저서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황종휴 강사가 수업을 들을 당시는 교과서의 연습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한국은행]] 총재로 물망에 오른바 있었으나 본인이 고사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노무현 정부]] 시절에 서울대학교 [[총장]](제23대. 2002년 7월~2006년 7월)을 역임했다. 총장 시절 신입생 세미나를 운영하면서 신입생들이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고 서울대학교에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민교협 소속으로 당선되어 진보세력의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지역균형선발제도 도입 등이 기억에 남는 업적. 또한 서울대 미대 창립자의 친일 문제를 건드려 해임된 김민수 교수가 복직하는 것을 막았다가 김 교수가 해임무효소송에서 승소하자 복직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