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원석(야구선수) (문단 편집) === [[두산 베어스]] 시절 ===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1996년]] [[OB 베어스]]의 2차 2순위(전체 17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로 입학했다. 3학년 때 [[한대화]] 감독을 만났으니 [[나름]]대로 10년 후를 내다본 선견지명이다. 졸업 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엔트리에 포함될 정도로 유망주였으나 구단에서는 빠른 병역문제 해결을 위해 상무에 입단시킨다. 제대 후인 2004년 복귀하여 주전 도약을 노렸으나 두산이 기존 2루수 안경현과 FA 계약을 체결해 백업 선수로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백업선수로 뛰다가 2007년 주전 기회를 잡았으나 시합 도중 왼쪽 무릎 후방 십자인대 파열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게된다. 비록 주전에서는 밀렸지만 내야 전포지션이 가능한 백업자원이라 쏠쏠한 활약을 했다. [[2009년]] 연봉조정신청을 하고 구단에 찍혀 단 한 경기도 1군에서 뛰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당한다. 그래도 [[200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었던지라 우승반지는 하나 있다. 두산 시절 친 몇 개 안 되는 홈런들이 꽤 인상적인 홈런이 많았다. 2007년엔 [[현대 유니콘스]]전에 3대1로 끌려가던 경기에 7회말 동점 투런을 친적이 있고 2008년엔 당시 잘나가던 마무리 [[한기주]]에게 9회초 역전 솔로포,[* 08년 한기주의 '''유일한''' 피홈런이다.] 우리 히어로즈[* 현 [[키움 히어로즈]]]전에 1점차 리드를 5점차로 만드는 만루홈런도 쳤었다. 또 하나 주목할만한 진기록은 한 투수가 한 타자 상대 최다 투구로 17개의 공을 이끌어 낸 적이 있다. 2008년 9월 24일 당시 [[우리 히어로즈]]의 [[장원삼]]을 상대로 얻어낸 것이다. 용규놀이 이전 원석놀이가 최다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2년 뒤 [[이용규]]에 의해 깨진다(박준수 상대 20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