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의(삼국지)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정의는 그의 동생 [[정이]]와 함께 [[양수(삼국지)|양수]]와 친하게 지내며 [[조식(삼국지)|조식]]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고 조조가 그를 태자로 세우려 할 때, 정의와 그의 동생 정이도 조식에 대해 좋게 말하여 조비에게 밉보였다. 성격이 유쾌하고 활발했으나 반대로 하면 방자하고 오만한 성격인지라 엄격하고 공정했던 사람들과 다투었다. 그 중에서 [[모개]]와 [[서혁]]을 싫어했다. 정의는 청렴하고 강직한 모개과 서혁을 모함하여 탄핵해 실각시키는 장본인이 되었다. 조조의 총애를 받고 있던 정의의 입장에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반대파를 숙청한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애시당초 모개과 서혁은 행적이 좋은데다가 흠집을 낼만한 건이 없어, [[환계]]와 [[화흡]]이 두 신하의 구명을 요청하여 모개는 집으로 돌아갔고, 서혁은 지방에서 위군 태수로 지내게 되었다. 정의는 글 솜씨가 뛰어나서 [[조조]]의 마음에 들어 그의 [[장녀|큰딸]]인 [[청하공주]]와 혼인할 뻔 했다. 그런데 [[조비]]가 "여자는 외모를 봅니다. 정의는 눈이 불편하니, 누님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라며 반대했고, 조조는 이 말을 듣곤 혼담을 없던 일로 하였다. 정의는 眇(애꾸눈 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건 한 쪽 눈이 작다(짝눈), 한 쪽 눈이 멀었다(애꾸), [[사팔뜨기]]다 등 뜻이 다양하다. 보통 매체에서는 애꾸보다는 짝눈이나 사팔뜨기로 묘사하는 편. 하여튼 이런 이유로 혼담이 취소되었는데, 조조는 나중에 정의가 어느 정도 유능한지 제대로 확인한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의가 사팔뜨기가 아니라 [[장님]]이었더라도 딸을 시집보내야 했다."[* ≪삼국지≫권 19ㆍ<위서>ㆍ<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 ..."丁掾,好士也,即使其兩目盲,尙當與女,何況但眇?是吾兒誤我。" [[https://zh.wikisource.org/wiki/%E4%B8%89%E5%9C%8B%E5%BF%97/%E5%8D%B719|출처]]] ≪[[세설신어]]≫에도 조조가 딸을 정의에게 시집보내려다가 그만둔 뒤에 후회한 일화가 실려있다. 조비가 이 혼담을 반대한 탓에 정의가 조식파로 들아간 것으로 잘못 해석하나 선후 관계를 따지면 정의는 이미 조비와 왕위계승을 다투고 있었던 조식의 편에 섰으며 계승권의 우위를 두기 위해 조비가 조식과 친했던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 그렇다고 조비가 '''삼국지 내 무능력의 대표주자였던''' [[하후무]]를 선택해서 짝지어준 것은 옳은 결정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하후무는 이후 첩을 늘려서 청하공주와 사이가 나빠지고 공주를 돕는 사람들의 참소로 죽을 뻔 했다. 이후에 정의는 조비의 행위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굉장히 나쁘게 망쳤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동생 정이와 함께 조식을 태자로 지지했다. 조조가 사망하고 후계를 이었던 조비는 즉위 후 조식의 측근인 정의와 정이 형제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때 정의와 정이 형제와 친했던 [[하후상]]이 울면서 이들을 살려달라며 간청함에도 불구하고 정의, 정이 형제를 잡아 가뒀다가 죽이고 정의, 정이 형제의 집안 남자들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죽였다. [[진수(역사가)|진수]] 문서에 정의, 정이 형제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자세한 것은 '≪삼국지≫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 항목을 보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