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장공 (문단 편집) === 아우를 축출하다 === 정장공 원년([[기원전]] 743년), 어머니 무강이 동생 공숙 단에게 정나라의 큰 고을인 경(京)을 분봉할 것을 청하니, 모사 [[채중(춘추시대)|채중]]은 나라를 둘로 나누는 일이라고 반대하였다. 하지만 정장공은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다 하여 공숙 단에게 경(京)을 분봉해 준다.[* 경에 분봉된 이후 경성대숙(京城大叔) 혹은 태숙 단(太叔 段)으로 불리게 된다.] 야심이 컸던 태숙 단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어머니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경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웠고 이런 불안정한 정국은 무려 22년이나 계속되었다. 정장공 22년(기원전 722년), 정장공이 주왕실에 입조하기[* 아버지의 경사(卿士) 지위를 세습한만큼 진작 입조했어야했으나 상기한 정국 때문에 좀처럼 입조 기회가 없었다.] 위해 나라를 비우자 태숙 단은 어머니 무강의 부추김에 넘어가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정장공은 이미 한발 앞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공자 려가 정장공의 명을 받아 200량의 전차를 끌고 단을 치니, 그대로 태숙 단은 패하여 본거지 경으로 달아난다. 이에 정장공은 경을 쳤는데, 경의 백성들이 태숙 단을 배반해 버린다. 단은 언성으로 도망갔으나 그 언성마저 공격받아 결국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그런데 단의 아들 공손 활이 위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정나라 늠연(廩延) 지역을 탈취하자 정장공은 천자인 [[평왕|주평왕]]에게 태숙 단의 반란을 보고했고, 평왕도 왕의 입장에서 군신 관계를 어지럽히는 단과 위나라를 내버려둘 수 없으므로 정나라에 주나라의 군대를 지원한다. 천자의 지지라는 명분에 실질적인 무력까지 확보한 정장공은 위군을 몰아냈고 아예 위나라로 쳐들어가 활을 징벌한다. 역사 소설인 [[열국지]]에서는 태숙 단이 언성에서 포위를 당해 헛바람을 넣어 준 어머니를 원망하며 자결하지만, 실제로는 위나라에 망명객으로 있다가 죽는다. 이 사건의 내막을 보면 실은 정장공은 즉위할 무렵부터 공숙 단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러자면 필연적으로 모후인 어머니를 거스르게 되는데다 추방을 하건 죽이건 친동생을 핍박하는 그와 같은 패륜 행위가 국내외에 미칠 크나큰 악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이 시기만 해도 주나라의 예법이 살아있던 시절이고, 종법과 친(親)의 질서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 그래서 무려 20년 넘게 진심을 숨긴 채 단이 자신을 얕보고 스스로 반란을 일으키기를 기다리며 인내했던 것이다. 결국 동생과 어머니를 향한 기만책이 대성공을 거두어, 공숙 단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20여년 동안 칼을 갈아 온 정장공이 손쉽게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열국지]]에서는 이렇듯 의뭉스럽다 할 정도로 지독한 그를 간웅이라 평했다. 이렇게 공숙 단의 반란은 수습되었다. 이어서 정장공은 내전의 또 다른 원흉이자 기어이 자식들끼리 상잔하도록 조장한 비정한 어머니, 무강을 영 땅에 유폐한다. 그리고 생모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 그녀에게 분노해 [[황천]]에 가기 전에는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래도 자신을 낳아 기른 어머니였기에, 이내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명색이 군주로서 입밖에 내놓은 말을 가볍게 물릴 수도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이때 정나라에 하급 관리로 영고숙(穎考叔)이라는 자가 있었다. 영고숙은 효심이 깊고 충성스러운 인물인지라 주군인 정장공의 고충을 덜고 효를 행할 수 있게 돕고자 나섰다. 그리하여 영고숙은 정장공을 찾아가 [[올빼미]] 고기를 진상하며 "올빼미는 어려서는 어미 젖을 먹고 자라지만, 커서는 어미를 쪼아대는 불효한 새라 사람들이 잡아먹습니다."라고 말한다. 정장공은 영고숙의 의도를 깨달았지만 그저 묵묵부답이었고, 마침 식사 시간이 되었던지라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한다. 음식으로 염소를 찐 요리가 나왔는데 영고숙은 이를 먹지 않고 맛난 부위만 골라 따로 덜어두었다. 장공이 왜 먹지 않는지 이유를 묻자 "집안이 가난해서 평소 어머니께 고기 반찬을 올리지 못했는데, 이참에 가져가 드리려고 합니다."라고 답한다. 그 효성에 감동한 장공은 "나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싶어도 맹세 때문에 만날 수조차 없네."라고 탄식했고, 영고숙이 맹세의 허점을 찔러 황천에서 모자가 상봉할 계책을 준다. 땅을 파서 샘물(泉)이 솟아나오면 곧 황천이니[* 현대 한국인에겐 잘 와닿지 않을 말장난인데, 천자문 첫머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天地玄黃)는 고대 중국의 우주관이었다.] 거기에 방을 만들고 태부인을 모시라는 것. 그 말을 좇은 정장공은 인공적으로 만든 황천에서 어머니 무강과 만나 화해한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이후 모자 사이는 크게 개선되었고, 정장공은 이 공로를 인정하며 영고숙을 대부로 삼아 중용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