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재원(1984) (문단 편집) ==== 2011 시즌 ==== 2011년 4월 3일 개막전 [[롯데 자이언츠|롯데]]와의 경기에서 조기강판당한 [[류현진]]을 구원등판해 1⅔이닝 무안타 무실점 1K를, 4월 5일 홈개막전인 [[KIA 타이거즈|KIA]]전에서도 [[훌리오 데폴라]]를 구원등판하여 역시 1⅔이닝동안 무안타 무실점 1K를 기록하여 2011년 필승계투조 진입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2011년 4월 6일, [[한화 이글스/2011년/4월/6일|406 대첩]]에서는 팀의 미칠듯한 추격전이 [[이여상]]의 병살로 엎어지자 연장 10회에 나서는 [[KIA 타이거즈|KIA]] 타자들을 탈삼진 2개 포함 삼자범퇴로 돌려세우는 무시무시한 포스를 뽐냈다. 이후 10회 말 [[이대수]]의 끝내기 솔로홈런으로 승리투수의 영광을 안았다. 이게 본인의 프로 데뷔 8년만에 얻은 첫 승이다. 이대로 가면 2007년부터 팀에서 1명씩 나타나는 핵심 불펜 2011년 버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안타는 안 맞는데 볼넷을 미친 듯이 내주며 제구력이 이전으로 돌아가더니 점점 출전 기회가 줄고 있다. 게다가 그의 제구력을 잡는 데 기여했던 [[한용덕]] 투수코치가 2군으로 내려가면서 더욱 정신줄을 놓은 정재원은 결국 5월 17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대형사고를 터뜨리고 말았다. 선발투수 [[양훈]]이 5실점후 내려가고 5회에 등판했는데, 첫 타자부터 볼넷으로 내보내 버리더니 연속 사사구로 순식간에 만루를 채워버리고 만다. 그것도 [[김현수(1988)|김현수]]에겐 2구째에, [[손시헌]]에겐 초구에 몸에 맞는 볼을 선사한다. 그것도 둘 다 위험한 부위인 등의 척추 부분을 맞췄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였다면 고의성 여부에 관계 없이 퇴장[* [[공두오]] 참조. 대표적인 빈볼 중 하나가 바로 상대 등에다 던지는 투구다.]을 당할 수도 있었을 만큼 위험한 투구였다. 후에 타자 [[양의지]]에게도 초구에 또 양의지의 등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폭투를 범해 결국 주자 1명이 홈을 밟고 주자는 2, 3루가 되었다. 오죽하면 경기에서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심판이 주의라는 명분으로 진정시키고 있었으니... 김현수는 꽤나 분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 바로 [[훌리오 데폴라|데폴라]]로 교체되었고, 데폴라가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함으로써 안타는 하나도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실점을 기록하여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진이 정재원의 마인드가 걱정되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 이후 제구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2군으로 강등, 2군 경기에서도 140이상의 공을 던지기 시작하면 자신의 공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폭투와 볼질을 일삼았다. 비교적 느린 구속의 공을 던질 때는 컨트롤에 이상이 없으나 시속 140km를 넘기면 극단적으로[* 단순히 존에서 벗어나거나 코너웍이 안 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하늘로 날아갔다가 타자를 향해 가는 등 전혀 제어가 되지 않는다.] 제구를 잃어버렸으며, 시즌 초에는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는 걸 고려해 보면 시즌을 치르면서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것 같다. 허리근육통으로 내려간 [[양훈]]을 대신하여 오랜만에 1군에 올라와 8월 20일 불펜으로 등판했으나 [[김경언#s-1]]의 삽질에 힘입어 1⅓이닝 5피안타 6실점을 기록하고 다음 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시즌이 끝난 후 한화에서 운영팀 멘탈코치를 고용한다고 각종 사이트에 영입공고가 실렸는데 이 멘탈코치 영입의 계기가 아닐까 하는 의혹도 든다. 그만큼 시즌 초반과 멘탈붕괴후의 차이가 심각했다. 어쨌든 또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즌을 마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