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정공 (문단 편집) == 생애 == 정 정공 원년(기원전 529년),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에서 공자 기질(公子 棄疾)이 [[초영왕]](楚靈王)과 [[자오(초나라)|자오]]를 살해하고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초평왕]](楚平王)이다. 초 평왕은 형 초 영왕이 정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 탈법적으로 즉위했으니 이런 식으로 제후들을 달랜 것이다.] 이때 [[진소공]](晉昭公)의 명으로 [[진(춘추오패)|진(晉)나라]]에 입조했다. 정 정공 6년(기원전 524년), 정나라에 [[화재]]가 발생해 그것을 끄게 했다. 그러자 자산이 말했다. "불을 끄는 것보다 덕을 베푸는 것이 낫습니다."[* 일견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불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재의 원인을 제거하라는 의미를 가진 발언이다.] 정 정공 8년(기원전 522년), 초나라의 태자 건(太子 建)이 정나라로 망명했다. 정 정공 10년(기원전 520년), 태자 건은 진(晉)나라와 짜고 정 정공을 살해하고 정나라를 차지하려 했다.[* 그 이유는 비무기를 죽이고 태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할 거점으로 정나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이 누설되는 바람에 정 정공은 크게 노해 태자 건을 죽이니[* 망명객이라고 받아줬더니 자신을 죽이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으니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화를 안 내는게 이상하다.] 건의 일행들 중 그 아들 왕손 승(勝)[* 백공 승(白公 勝)이라고도 한다.]과 [[오자서]]가 오나라로 달아났다. 정 정공 11년(기원전 519년), 정 정공은 진(晉)나라에 가니 진(晉)나라가 정나라와 함께 주나라의 반란을 모의했던 신하를 죽이고 희조를 몰아낸 뒤 [[주경왕(26대)|주경왕]](周敬王)을 세웠다. 정 정공 16년(기원전 514년), 그 아들 희채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정 헌공이다. [각주] [[분류:정나라의 군주]] [[분류:기원전 514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