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진영(야인시대) (문단 편집) ==== 반론 ==== 반론의 논거는 반대로 정진영이 유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유독 무능하다고 콕찝어 까일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진영이 리더보다 참모에 더욱 어울리는 인물인 것은 맞지만 리더로서 심각한 하자가 있던 인물은 아니다. 다만 상대가 너무 강했던 탓도 있고 남한은 미군정인데다 남한의 경찰과 판검사들이 [[반공|공산주의에 적대적인]] 관계로 공산당이 불리한 입장에서 싸웠던 탓이 크다. 김두한도 작중 리더로 좋은 평가를 받곤 하지만 사실 김두한의 리더십은 상당히 위험하며 이때문에 조직이 망할 뻔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주인공 보정 등으로 결과가 좋았을 뿐 이상적인 리더는 아니다. 오히려 이상적인 리더는 하야시 쪽이 작중 최고로 꼽힌다. 김두한처럼 조직을 위기에 빠뜨린 적 없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모토로 조직을 운영했기 때문. 굳이 변호하자면 정진영은 상대가 좋지 못한데 지원도 그에 못 미치고 운도 없었다 볼 수 있다. 작중 정진영의 뜻에 반해 했던 김천호의 돌출행동은 뛰어난 리더십을 보유했다는 하야시 조직에서도 가미소리의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이는 리더십의 문제가 아닌 조직의 풍토 문제며 우미관 조직에서 이런일이 없던 것은 과거 주먹패의 낭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용산 파업은 정진영보다 서열이 높은 허성탁의 지시로 약속을 파기한 것이라 막을 수가 없던 위치였다. 마치 가미소리의 비겁한 짓을 막지 못하고 썩은 표정으로 싸움에 참가하지 않은 시바루 같은 입장이었다. 부하들의 역량부족은 맞다. 다만 이는 상대가 강한 것일 뿐 대원들도 운동유단자로만 수십명이 있을 정도니까 무능은 아니다. 시라소니한테 털린 거는 솔직히 그럴 수 있는 편이다. 하다못해 명동이나 우미관도 오야붕까지 나서지 않으면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우미관도 신영균 이하가 싹다 덤볐다가 모조리 털린 전적이 있다. 확실히 김두한의 활약에 털린 것은 맞지만 이는 김두한의 선제 공격에 일단 얻어맞고 시작한 측면이 크다. 대한민청 발족식과 동시에 바로 신불출 납치와 국군준비대 해체 공격에 나섰다. 조선청년전위대는 발족 뒤에 신탁통치 찬성운동이나 연극 상영이나 하는 등의 선전을 지키는 방어적인 일들이 우선이었다. 선제 공격은 김두한 개인에 대한 공격 뿐이었다. 즉 전위대 쪽은 김두한 개인에 대한 공격을 제외하면 우익진영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없었고 대한민청 쪽은 정진영 개인에 대한 공격을 자제한 대신 무차별적인 공산당 조직에 대한 무력 강경 진압에 나섰다. 그래서 초반에는 김두한이 전위대 쪽의 기습을 개인무쌍으로 털어버리며 위기를 넘긴 뒤 대한민청 결성 직후부터 다방면으로 신속히 기습을 하여 신불출과 국군준비대를 제거했으며 연이어 심영과 중앙극장까지 날려버렸다. 하지만 털리면서 결국은 김두한의 뒤를 기어이 따라잡아 김두한이 머물던 애기보살의 요정을 포위, 김두한을 사지로 모는 것에 성공한다. 운이 나빴을 뿐 이 한 방으로 승부는 충분히 갈릴 수 있었다. 하야시처럼 작중 리더들 중 최강급이라보긴 어렵지만 콕찝어 무능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상 남한 자체가 미군정이라 우익이 유리한 상황에 경찰도 김두한 편에 명동도 서북청년단이라며 우익 청년집단이었고 불리한 와중에 할 수 있는 것은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봐야 할 것이다. 애초에 그가 이끌었던 조직자체가 결성된 지 얼마 안 된 집단이라 명동이나 우미관같은 오래된 조직과의 결속 비교도 힘들고 어쨌든 리더가 하자있어서 조직이 망한 케이스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만한 리더쉽을 보이지 못했을 뿐. 여러모로 작중 남로당이 이래저래 하자가 많다 보니 상황에 휘둘리고 허구한날 털리는 모습이 부각되기는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