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치현실주의 (문단 편집) == 한계와 비판 == 현실주의는 그 단순함 때문에 널리 지지를 받았지만, 또한 그 단순함에서 오는 설명력의 한계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 '국가'를 최소단위(unit)로 놓는 가정의 문제점 : 구성주의에서 제기하는 비판이다. 정치현실주의는 19세기 유럽을 연구하면서 탄생했기 때문에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가가 아니면 성립하기가 어려운 가정을 암묵적으로 깔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치현실주의가 설명력이 낮다고 자주 지적받는 것은 식민지 전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인도 등지에서는 스스로 외교권, 주권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의 소멸을 택한 것이다. 이렇듯 내부 정치적 세력 때문에 국가가 자살을 택하는 상황은 정치현실주의가 설명을 못하는 부분이다. 지배층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안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 '관념'측면에 관한 장님(blindness): 구성주의에서 제기하는 비판이다. 서양의 연구는 관념-물질, 2가지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서양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정치현실주의는 시대적으로 현대의 위기(Crisis of Modernity)의 맥락에서 나왔는데, 기존의 관념측면이 별 기여가 없고 편견으로 연구를 오염시킨디다는 시각에서 의도적으로 완전히 배제하는 접근을 했다. 단기적으로는 깔끔하고 체계성있는 모형을 만들 기반을제공했지만, 그것은 완전 무균 실험실 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져서 설명력이 후퇴하는 듯한 모습도 나타났다. 심지어 일반인 보기에도 분명히 관념이 주 요인인게 분명한 상황에서도 엉뚱한 설명을 내놓고는 한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대의 [[다에쉬]]가 자주 쓰이는데, 다에쉬가 등장하고 확장하는 모습을보면 고전적인 '국가' 모형을 가진 시리아나 이라크 내부에서부터 해체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다에쉬가 국경을 뛰어넘는 광적인 종교운동에 의해서 움직였다는게 명백하다. 그럼에도 정치현실주의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미국의 철수로 힘의 공백이 발생한 것에 불과하다는 단편적인 평만 내놓을 뿐이다. * '주체'와 '객체'구분의 모호함: 정치현실주의는 영향력(influence)라는 개념이 즐겨 사용된다. 다시말해서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주체적인 세력이 영향력을 투사하고, 이외의 약소국들은 주변부로써 객체가 되어서 영향력 아래에 놓인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정치현실주의 학자(Hans Morgenthau학파 계열)들과 유럽의 정치현실주의 학자들과의 갈등이 터지는 계기가 된다. 미국 정치현실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가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후퇴해서 세력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반면 동유럽 정치현실주의자들은 유럽 vs 러시아의 구도로 보고 균형점을 찾으려면 우크라이나가 최소 중립, 더 나아가 유럽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여기서 들어나는 것은 정치현실주의란 것이 누구를 주체로 보느냐에 따라서 고무줄 마냥 왔다리 갔다리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는 동유럽은 객체이고, 러시아와 거래하는 판돈에 불과하다. 반면에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스스로가 그러한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고 본 것이다. 이렇듯 현실주의자 내부에서도 통일된 의견이 잘 나오지 않는 것 때문에 현실주의가 추구하는 '객관성'이란 것을 놓고 다른 계열의 학자들의 비웃음 대상이 되고는 한다. 그들 스스로 믿는 만큼 객관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이 강한 유럽 학자들이 미국 학자들을 비웃는 주된 포인트다. *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의 허구성 : 독일 학자들이 제기하는 비판이다. 이들은 정치현실주의가 뿌리를 두는 [[빈체제]]와 [[비스마르크 체제]]를 독일어 원문을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비판을 가한다. 주된 비판은 정치현실주의가 이상화하는 '힘의 균형'이란게 존재하지를 않고, 다음 갈등이 잉태되는 쉬는 시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비엔나 협의 직후 10년 만에 오스만 제국은 몰락하고, 러시아는 대대적인 확장에 들어갔고, 군국주의의 프러시아는 유럽의 대다수 국가와 전쟁을 벌였으며, 각 제국의 내부는 사회시민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이 진행되면서 오늘날 같은 유럽 국가들이 탄생할 기반이 형성되었다. 게다가 19세기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무력충돌이 활발했던 시기다. 유럽 밖에서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인 무력충돌에 대해서는 정치현실주의자들이 장님이 된다는 비판은 오래된 것이다. 한편 빈체제와 비스마르크 체제, 연합국 vs 동맹국(추축국)의 제국간의 힘의 균형은 여러번 나타났지만 평화는 커녕 오히려 무력충돌의 수준만 급격하게 올라갔다는 것도 회의주의자들이 자주 논하는 부분이다. 근본적으로 독일어권 학자들은 현실주의란 히틀러를 피해 도망갔던 세대의 독일학자들의 의견을 영미학자들이 받아쓰기한 것에 불과하고, 뒤떨어진 독일 외교사 연구에 기반을 둬서 문제가 많다고 여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