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태진(1876) (문단 편집) === 초년기 === 정태진은 1876년 8월 11일에 경상도 영천군(현 경상북도 영주시 상줄동 줄포마을)에서 아버지 정규덕(丁奎悳)과 어머니 [[영양 남씨]] 남기홍(南基弘)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속한 가문인 나주 정씨는 고려 말 이후 주로 경기 지역에 살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法泉)에 살았다. 병조정랑을 역임한 정호공(丁好恭)의 아들인 정언숙(丁彦璛)은 원주에서 다시 경상도 영주의 상줄동 줄포마을로 이주했으며, 정태진은 정언숙의 10대손이다. 정태진은 1895년에 이병호(李炳鎬)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수학했고, 1908년에 이병호가 작고하자 [[곽종석]]의 문하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정태진은 이병호의 가르침을 받을 때 그로부터 주리론을 전수받았다. 그는 이병호가 [[이황]] 이후에 주리론을 크게 발전시켰다고 높이 평가했으며, 이병호를 애도하는 시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가학(家學)의 심통성격도(心統性情圖)가 전해지는데 >진전(眞詮)이 오랜 세월 지나 바래졌도다. >문장마다 주리의 종지(宗旨) 담겨 있으니 >천고토록 진실로 서로 부합한다네. 이후 그는 곽종석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그로부터 이병호의 학문과는 별개의 것을 전수받았다. 곽종석은 그에게 유자라고 하여 시국에 완전히 어둡거나 사물을 소홀히 하여 내치거나 버려서는 안된다며, 외국어를 익히고 서양의 신사상 중 참고할 만한 것은 참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정태진은 이러한 곽종석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현실 대응에 있어서 다소 경세학적인 학풍을 지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