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훈(농구선수) (문단 편집) === 국가대표 === 명지고 2학년이던 1996년 FIBA Asia U-18 대표팀에 [[김주성(농구)|김주성]], [[전형수]], [[송영진(농구)|송영진]] 등과 함께 뽑혀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청소년대표) 성균관대 4학년이던 2001년, 당시 김춘수 감독이 이끌던 2001 오사카 동아시안게임 대표팀(대학선발)에 [[양동근(농구선수)|양동근]], [[김주성(농구)|김주성]], [[송영진(농구)|송영진]], [[김동우(농구선수)|김동우]], [[김태완(농구)|김태완]] 등과 함께 출전하여, 예선전에서 야오밍과 왕즈즈가 모두 출전한 중국 성인 국가대표팀[* 바로 직후에 열리는 2001 상하이 아시아선수권 우승멤버들이었다.]을 꺾는 대 파란을 일으키지만, 카자흐스탄 등 다른팀들에 패하며 4위에 그쳐 메달 획득에 실패한다. [[파일:deejayku_255228_1[376857].jpg]] 동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시절 ~~덩크하는 거만 보면 국대 에이스인줄;;~~ 상무시절 팀의 에이스로 맹활약하던 정훈은, [[전창진]] 감독이 이끌던 2005 도하 [[FIBA 아시아컵|아시아선수권 대회]]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성인국가대표에 데뷔하게 된다.[* 당시 [[이규섭]]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대체선수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전창진]]의 국가대표는 여전히 [[문경은]], ~~[[방성윤]]~~ 등 3점슈터들만 중용하는 양궁농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3점은 커녕 공격시 존재감이 제로(0)였던 정훈은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대표팀이 중국에 더블스코어급으로 참패했던 4강전 가비지타임에 잠깐 출전해 쑨웨(G,206cm)를 상대로 한차례 위력적인 블록을 보여준게 끝!이었다.] 2006년 오랜만에 한국에서 열린 국제농구대회였던 "비타500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에 출전한 [[최부영]] 감독의 대표팀 18인 로스터[* 당시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선발한 18인의 예비로스터 개념의 대표팀이었다.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펼치던 [[8월]], 에어콘도 안나오는 [[잠실실내체육관]]([[서울 삼성 썬더스]] 홈구장)에서 5일간 4경기를 연속으로 치러야 하다 보니 선수단을 최대한 많이 구성했었다.]에 이름을 올렸으나 안타깝게도 거의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몸풀기 타임에 [[김민수(농구선수)|김민수]]와 함께 360도 덩크쇼만 보여준 게 끝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