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희진 (문단 편집) === 스스로의 선언과 모순되는 [[근본주의]] === 그의 대표 저작 중 하나인 '''페미니즘의 도전''' 머릿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혀 왔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은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속에서 자신을 당연한 주류 혹은 주변과 동일시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찾아내고 소통해야 한다. 2020년 8월 17일 한겨레 기고문에서 정희진은 조국 사태, [[윤미향]]과 정의연 사건, 박원순 성추행 사건을 다루면서 모든 것을 하나의 잣대로 본다고 비판했다. 정희진이 말한 그 하나의 잣대에는 젠더 문제도 들어간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2509046|2020년 8월 17일 네이버-한겨레신문 [정희진의 융합] 정의연, 박원순, 조국 사건은 같다?]] >세 사건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환원주의(reductionism, 還元主義)의 대표적 사례다. 환원주의를 우리말로 옮긴다면, 모든 문제가 하나의 출구로 빠지는 ‘깔때기(수렴) 이론’ 혹은 “돌고 돌아 언제나 제자리”쯤 될 것이다. 하나의 잣대로 세상을 평정해 버린다. 인간이 겪는 문제는 모두 계급 문제, 젠더 문제, 분단 문제, 언론 문제,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기후 문제, 인성 문제…라는 식의 논리다. 초기 마르크스주의와 일부 페미니즘도 환원주의였고, 이는 변화하지 않는 어느 지식이나 피할 수 없는 경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논지를 전개함에 있어서 단지 젠더의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만이 타자성을 경험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근본주의적 태도를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회의 주요한 갈등축을 젠더로 삼는다고 해서 반드시 근본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 즉 침묵 내지 소극적 태도가 곧 근본주의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