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전국시대) (문단 편집) === [[전국시대]]의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전제) === [[진(규성)|진나라]] 공족 출신의 전씨는 시조 [[진완|전완]] 이래 [[제(춘추시대)|강제]]에서 득세, 대대로 [[재상]]을 세습하며 강제의 실권을 장악하여 [[역성혁명]]으로 강제를 [[멸망]]시키고 전제를 창건하였다. ~~[[캐삭빵]]~~ 총력전이 펼쳐지는 [[전국시대]]로 넘어오면서 태공 전화의 손자인 [[제위왕|위왕]] 때는 [[왕]]을 칭했다. 그의 아들인 [[제선왕|선왕]] 때는 [[손빈]] 등을 등용하여 점점 강성해졌고 [[제민왕|민왕]] 때는 [[전국칠웅]] 중 서쪽의 [[진(영성)|진(秦)나라]] 다음가는 [[콩라인|강대국이 되었다.]] 민왕은 한때 왕보다 높은 칭호인 [[제]](帝)를 칭하는 등 위세를 부렸으나, 자주 침공하던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의 [[명장]] [[악의(전국시대)|악의]]를 포함한 [[제-연 전쟁|각국의 연합군에게 대패한]] 후에는 [[연나라]]를 필두로 한 [[진나라]], [[조(전국시대)|조나라]], [[위(전국시대)|위나라]], [[한(전국시대)|한나라]]가 연합한 합종군의 침공에 [[제나라]]도 버티지 못해서, 수도 임치가 떨어지고 70여개 성이 6개월 만에 모두 넘어가 결국 남은 성이 거와 즉묵 두 개(사료에 따라서는 세 개)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당시 민왕은 수도 임치에서 탈출한 후 [[추]](鄒), [[위(춘추전국시대)|위]](衛) 등 여러 약소국들을 전전했는데, [[넌씨눈|그 꼴에도 자기가 왕이라면서 거드름을 피우다가 모두 거절당하거나 쫒겨났다.]] 결국 민왕은 남아 있었던 성 두 개 중 하나였던 거성으로 달아났는데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초나라]]의 [[고열왕]]은 장수인 요치(淖齒)에게 군대를 주어 구원을 하게 했는데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라고 했다. 요치의 초나라 군대 덕분에 간신히 거성의 함락은 막았지만 제민왕은 초대형 악수를 두는데 요치를 [[재상]]으로 봉하고 모든 권력을 넘겼다. [[통수|그리고 실권을 장악한 요치는 곧바로 민왕을 죽여버렸다.]][* 출처: [[사마천]], 《[[사기(역사책)|사기]]》[* <전경중완세가>] 이 일을 두고 <[[범수(전국시대)|범수]] 열전>에서 범수는 요치가 민왕의 힘줄을 뽑은 후 그 힘줄로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죽여버렸다고 말했는데, 다만 제나라의 <세가>나 당시 인물의 기록에는 그런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저 소문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이었던 제나라였지만 민왕의 비참한 죽음과 멸망 직전의 나라를 보고 분노한 백성들의 저항으로 요치는 죽음을 당했고 초나라 군대는 축출되었다.[* 출처: 《[[자치통감]]》 <주기> 4권][* 《사기》 <세가>에서는 그냥 요치가 물러갔다고만 서술하고 있다.] 이후 거성의 백성들은 태사(太史) 교(嬓)의 집에 [[정원사]]로 위장한 채 숨어 있었던 민왕의 세자 법장을 찾아내 즉위시키니 그가 [[제양왕|양왕]]이다. 한편 또다른 성이었던 즉묵에서는 [[왕족]]인 [[전단(전국시대)|전단]]이 나서서 이간책을 사용하여 연나라의 명장 악의를 쫓아내고, 소 꼬리에 불을 붙여 돌진시키는 화우지계를 써서 악의 대신 연나라의 대장으로 있었던 [[기겁#s-2]]을 죽이고 연나라 군대를 대파했다. 이에 연나라에 점령당한 제나라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고 연나라 군대는 전단과 제나라 군대에게 추격당해 국경 밖으로 쫓겨났다. 그 결과 제나라는 70여 개 성을 모두 수복했다. 하지만 제나라는 제-연 전쟁으로 국력을 너무 소모하여 중소국가로 위축되고 예전의 영광은 다시 찾지 못했고 지속적으로 주변 나라들인 조, 위, 초에게 야금야금 영토를 빼았기며 수세에 몰렸다. 결국 양왕의 아들대였던 [[제왕건]] 시대에 결국 [[시황제|진(秦)왕 영정(진 시황제)]]에 의해 기원전 221년에 멸망했다. [[진(영성)/통일전쟁|제나라의 멸망은 연나라의 대규모 침공 때보다 더 허망했다.]] [[관동]] 6국 중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이미 멸망한 상태였는데, 그나마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경술국치|제나라는 싸움 한 번 안 하고 나라를 들어 바친 것이다.]]''' 이는 [[이사(전국시대)|이사]] 등이 제나라 왕 전건과 그의 처남인 ~~[[이완용]]~~ [[후승]]에게 이간질+뇌물로 회유한 결과였다.[* 물론 후승은 전제의 멸망 후 곧바로 처형되었다(...). 좋은 [[토사구팽]]의 예.][* 마지막 왕인 [[제왕건|제왕 건]]은 항복하면 500리의 땅을 주고 조상의 제사라도 시켜준다는 조건에 혹해서 [[항복]]했지만 [[페이크다 병신아|속임수였다.]] [[진시황]]에 의해 북쪽 국경 부근의 산골 마을인 공현으로 유배당한 제왕 건은 조그마한 집에서 초라하게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 공현은 땅이 척박하여 식량이 부족한 지방이었다. 이때 같이 끌려온 수백 명의 제나라 규성 전씨 [[왕족]]들이 굶어죽었으며, 왕족 아이들의 밥을 달라는 울음이 이어졌다. 결국, 아들이 행방불명되자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은 제왕 건은 비참하게 '''[[아사|굶어죽었다]]'''.] 전국칠웅 최후의 국가 전제의 멸망으로 [[춘추전국시대]] 이래 분열되었던 [[중원]]은 마침내 진시황 치하의 진나라에서 [[천하통일]]이 [[그러나 이 사진이|완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