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연평해전 (문단 편집) == 제1연평해전의 설명 == 꽃게철에 북한 어선이 대규모로 NLL근처에서 조업을 하자 북한군이 이를 감시하러 내려왔고 그 결과 한국군과 대치하는 일이 일어났다. 한편, 이러한 일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한다. 때마침 군은 서해를 안보 취약지대로 설정하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북한은 1999년 6월 6일부터 15일까지 NLL 근처를 들락거렸는데 6월 15일 오전 북한 경비정 4척이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 해역까지 내려왔다. 북한은 1999년 6월 6일부터 15일까지 매일 [[NLL]]을 넘어와 몇 시간씩 한국 영해에 머물면서 한국군을 도발하고 있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남북 해상경계로 인식되어 왔던 NLL을 무시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에 한국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하여 선체를 직접 충돌시키는 밀어내기로 북한 함정을 NLL밖으로 내보내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 고속정이 북한 고속정에 올라타는 일이 벌어졌고 자칫 잘못했으면 큰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참수리 325정도 북한 고속정을 함수로 들이박았는데 함교에서 북한군의 시체와 생존자들이 총을 겨누는 모습이 가까이서 보였다고 한다. 오전 9시 28분, 충돌공격을 받은 북한 청진급 경비정 1척이 갑자기 25㎜ 기관포로 공격을 시작하자 다른 함선도 이어서 공격에 가담하였다. 이 과정에서 [[참수리급]] 고속정 325호 정장 안지영 소령(당시 대위)을 비롯하여 당시 325호에 탑승한 장병들 중 일부가 부상을 당했다.[* 당시 우리 고속정 함교를 저격수가 노렸다고 한다. 안지영 정장은 [[저격]]을 당했지만 [[방탄복]] 덕분에 경미한 부상만 입었다.] 하지만 325호는 곧바로 40mm 기관포와 20mm [[시벌컨]]으로 응사를 가했다. 이때 북한 경비정은 오픈탑 형식이었고 대부분의 북한 수병들이 근접전을 위해 함상으로 나와있었던 지라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증언에 의하면 함 위에 있던 북한 수병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한다.'''] 이어서 [[포항급 초계함]] 영주함이 76㎜ 함포로 집중포화를 가했고 그 결과 북한의 신흥급 어뢰정 1척과[* 16명의 승조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진급 중형 경비정 1척 등 2척이 침몰하였으며, 다른 경비정 3척도 크게 파손된 채 퇴각하였다.[* 대청급 경비정 1척은 [[참수리급]] 고속정의 충돌로 크게 대파되었고 상하이급 경비정 1척은 선체가 반쯤 물에 잠길 정도로 파손된게 관측되었다. 청진급 경비정 2척 역시 충돌 및 엄청난 포격으로 둘 다 대파(또는 1척은 침몰 추정)되었다.] 제1연평해전에서에서 쓰인 "충돌" 전략이 큰 효과를 거두면서 오히려 역효과가 생겼다. 잘못된 교전 수칙이 제1연평해전의 승전으로 별다른 문제를 지적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것. '''결국 북한은 이를 역이용해 제2연평해전에서 국군에 큰 피해를 입히게 된다.''' 수뇌부는 제1연평해전의 성공적인 결과로 당시까지 해군 수칙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자세한 건 [[제2연평해전]] 문서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