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0기계화보병사단 (문단 편집) === 제91기계화보병여단 독수리 === [include(틀:해체된여단)] 본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고양)|화전동]]에 위치해 있다. 사단본부 영내에 있지는 않지만 사단본부 후문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병소가 있다. 사단과 여단은 위병소를 두고 한 길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에 인근의 [[덕양중학교]]를 끼고 있다. 사단과 연결되는 후문 위병소 바로 앞에 군인가족아파트가 있으며, 영내에도 시설은 별로 안 좋은 독신자 숙소가 있긴 하다. 여단 정문 쪽으로 나가는 길엔 사단회관인 필승회관이 있다.[* 엄연히 부대 내부 시설이나 어느 부대 회관들이 그렇듯, 외부와 가까워서 이따금 사단 소속 연예인들이 전역할 때 인사하는 접견 장소로도 많이 쓰였다. [[https://www.google.com/search?client=ms-android-samsung-ss&sca_esv=589097879&sxsrf=AM9HkKkd8xQeYL_ev36FA_LScAgewv6XMw:1702046987458&q=%EA%B9%80%ED%98%84%EC%A4%91+%EC%A0%84%EC%97%AD&tbm=isch&source=lnms&prmd=ivnsmbtz&sa=X&ved=2ahUKEwiF9c-Qi4CDAxXDbN4KHQ2lBs8Q0pQJegQICBAB|예시. 김현중의 전역]]] 인접 지하철역으로는 [[화전역]]이 있으며, 위병소 통과 후 화전역까지 도보로 10분 정도 걸린다. 나가는 길에 홍대입구역까지 30분이 채 안 걸리고 서울역까지는 1시간도 안 걸리는 지리적 이점이 용사들 사이에서 큰 만족감을 준다. 영내의 종교시설로는 기독교(개신교) 교회 건물이 있다. 천주교나 불교를 가려면 사단으로 가야하는데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다. 위수지역에 [[인천광역시|인천]]은 물론 서울 이남의 [[경기도]] 지역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서울 내부에 독립대대로 주둔 중인 52전차대대를 제외하고[* 이쪽은 부대 위치와 주변 교통 여건으로 인해 연신내로 많이 간다.] 외박 때는 홍대, 건대 쪽을 많이 간다. 걸그룹 [[시크릿]]이 유명해지기 전, 체험 삶의 현장 촬영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촬영장소는 118 대대에서 진행되었지만, 여단본부와 자매 대대인 117 대대에서 일부 인력을 차출해 촬영에 참가했었다. * 여단본부 [[본부중대]], 의무중대(30사단 의무근무대 직접지원2중대), 통신대로 구성되어 있고, 신막사이다.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관으로 여단장 대령 이정욱(육사 52기), 본부중대장 대위 한병욱, 통신대장 대위 송상현이었다. * ~~제117기계화보병대대 포효~~ 군인가족아파트를 짓게 되면서 연병장이 없다. 여단본부랑 같이 쓴다. 문제는 여단 연병장이 막사보다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연병장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으로 복도와 생활관이 사막을 연상시킬만큼 수북하게 쌓인다. 막사 바로 앞에 군인아파트가 있다. 이 부대 역시 해체되었다.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관은 대대장 중령 추호영이었다. * ~~제118기계화보병대대 폭풍~~ 여단 위병소 안에 있고, 구막사에 침상생활관이다. 전차대대가 아니기 때문에 장갑차밖에 없다. 중대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겠지만 부조리는 거의 없는 편이다. 병영복지시설(PX, 휴게실, 사이버지식정보방, 체력단련실, 노래방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유격, 혹한기 훈련 같이 큰 훈련은 다 하고 곧 해체될 부대라 전역병에 비해 신병이 매우 적게 들어온다.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관으로 대대장 중령 박정훈(해체 이후 30기갑여단 존속부대인 115기보대대 대대장 취임했다.) * 제52전차대대 팬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소재. 다른 여단 예하 대대와는 달리 혼자 [[서울특별시]]에 홀로 독립대대로 주둔 중이다. 이 때문에 52대대로 배정받은 장병들은 매우 좋아하지만 사실 서울에 있다는 것 외에 별로 딱히 장점이 없다. 근처에 [[제56보병사단]] 본부 및 [[수도방위사령부]] [[방패교육대]]가 주둔 중이며 대대 위병소에서 [[연신내역]]까지 시내버스로 20분 이내에 주파 가능하다. 제30기갑여단으로 재편된 직후 확정 잔류하였고 91여단 예하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존속한다.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관으로 대대장 중령 김진동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