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52보병사단 (문단 편집) == 역사 == [[대한민국 육군]]의 [[보병]] [[사단(군사)|사단]]. [[1978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현 [[문래공원]][* 옛 [[제6군관구사령부]] 주둔지. 문래공원 남단에 52사단 창설지 기념비가 있다.]에서 [[제3야전군사령부]](현 [[지상작전사령부]]) 예하 '''제100훈련단'''으로 창설되었으며, [[1984년]] 1월7일 [[수도방위사령부]]로 예속되며 [[사단(군사)|사단]]으로 승격되었다. 훈련단 창설 당시에 서울 남부지역에 대한 예비군훈련 임부를 [[제63보병사단|63훈련단]]으로부터 인수하였다. 즉, 52사단 창설 이전의 서울특별시 남부는 수방사 담당 구역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애당초 수도경비사령부는 5.16 이후 군사정권의 방어를 위해 30사단과, 33사단(지금의 17사단)에서 각각 1개 대대씩을 차출하여 경복궁에 주둔하게 하고, 두 대대를 연대급으로 취급하여 연대장급 단장을 두고, 사단장급 사령관을 두는데서 시작되었다. 이후 80년대에 수도경비사령부가 수도방위사령부로 바뀌고 군단급 부대로 개편되면서 관할 지역이 대폭 늘어났다.] 100훈련단 창설 이후부터 사단 승격 때까지는 서울 남부지역 예비군훈련은 100훈련단(1975~78년에는 63훈련단)이, 현역의 지역방위임무(전시, 사변 및 계엄령 선포시 출동 등)는 33사단 101연대가 맡던 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계엄이 아닌 군사반란의 목적이었지만, 실제로 1980년 5월 18일 자정 33사단 101연대 1대대 3중대는 [[5.17 내란]] 당시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의거한 지시로 출동해 국회의사당 봉쇄에 동원된 적이 있다. 다만 이 때 당시 101연대 1대대는 100훈련단을 경유하여 수도군단과 육군본부의 작전통제를 받았다.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지역방위사단이며 평시에는 [[서울특별시]] [[한강]] 이남의 [[예비군]]들에 대한 교육훈련을, 전시에는 적의 한강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교량을 차단하고 한강 이남의 주요 거점방어지역을 중심으로 서울을 사수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사단 창설과 동시에 서울 강남, 영등포 지역의 위수임무를 [[제17보병사단]]으로부터 인수받았다. 52사단 창설 이전의 서울 남부는 17사단 101연대(현 17사단 101여단)[* 웃기게도 안양 석수동을 떠나 최근까지 자리를 잡고있던 곳이 52사단의 관할 위수지역 내에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부대 이전떡밥이 쟁점사항으로 남아있었는데, 최근에 해당 연대가 인천광역시로 재이전했다.] 관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52사단의 실질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7사단이라는 설이 있다.[* 지금의 과림예비군훈련장(당시 17사단 101연대 1대대)과 박달예비군훈련장(당시 17사단 101연대 2대대)이 과거에는 17사단(33사단) 예하부대 자리였다는 설도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와 관악산 등지에서도 훈련한 적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영등포구 문래동에 주둔하다가 노량진을 거쳐 1983년에 [[광명시]]로 이전했다. 서울 강북을 담당하는 지역방위사단은 [[제56보병사단]] 문서로. 이 부대 소속 직할대 가운데 독특한 임무를 가진 부대로 동작동 서울국립현충원의 경계와 의전을 담당했던 52경비대가 있었으나, 현충원의 경비업무가 민간으로 이관되면서 2008년 11월 해체되었다. 책임위수지역은 [[서울특별시]] 중 한강이남지역으로, (구)[[제6군관구사령부]](영등포 주둔. 현 문래공원 일대)의 위수지역과 겹친다. 서울 한강이남 지역 학생예비군,[* [[서울대]], [[중앙대]], [[숭실대]], [[서울교대]] 등.] 직장예비군 훈련은 이 부대가 담당한다. [[국방개혁]]으로 인해 2020년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