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5군단 (문단 편집) == 연혁 및 특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승진부대_엠블럼.png|width=100%]]}}} || || {{{#fff100 '''대한민국 육군 제5군단 승진부대'''}}} || 1953년 10월 1일에 창설되었으며 1954년 12월 2일 [[제1야전군사령부]] 예하로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창설된 [[제3야전군사령부]]가 경기도 지역을 인가받으면서 제1군단, 제6군단과 함께 예하 부대로 배속되었다. 2019년 1월 1일부터는 [[지상작전사령부]] 예하 부대이다. [[부대마크]]에 대하여 5군단 인트라넷 홈페이지에는 Victory의 V를 상징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군단급 부대가 모두 로마숫자로 부대 마크를 표시하고 있고 미군과 많은 국가의 5군단이 5th가 아닌 V Corps로 영문을 표기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경례구호]]는 '통일'이었으나 2009년부터 부대 명칭과 통일하여 '''승진'''으로 변경하였다. [[위수지역]]은 중부전선 지역인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특별자치도]] [[ 철원군]]으로 전면전 발발시에 [[북한군]]이 전차 등으로 쓸고 내려올 주요 축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매우 중요한 방어임무를 맡고 있다. 직접적으로 대치하는 [[북한군|위쪽]]의 부대 역시 5군단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때 아래쪽 최고 군단이면서 동시에 위쪽 최고 군단을 막는 부대라면서 자부심을 고취시킨 적도 있다. 이처럼 중요 축선을 방어하기 때문에 제5군단장 자리는 [[제1군단장]]과 함께 군단장 중 최[[요직]]으로 꼽힌다. [[김일성]]은 철의 삼각지대 철원평야를 빼앗기고 3일을 울었다고 한다. 전략적 요충지인 만큼 정전 이후에도 남·북한은 철원지역에 [[주력 부대]]를 집중 배치했다.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 점령에 큰 공을 세운 사단을 철원지역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맞서 5군단은 한국전쟁에서 최대 전과를 세운 [[제6보병사단]]과 [[제3보병사단]] 등을 내세웠다. 3사단은 1950년 10월 1일 최초로 38선을 돌파해 북진했으며, 6사단은 '춘천대첩'으로 당시 유일하게 38선 방어에 성공하고 중공군 3개 사단을 물리친 ’용문산 전투’ 등 혁혁한 공을 세웠고 1950년 10월 26일 최초로 압록강까지 진격한 뒤 철모로 물을 떠 대통령에게 헌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후 창설된 '''최초의 군단급 제대'''였기 때문에 직할 부대들 또한 특수병과별로 우리나라 최초로 창설된 경우가 많다. '''국군 최초의 특공부대 제705특공연대'''를 비롯해 '''육군 최초 창설 포병대대'''도 5군단 예하 사단에 2개 대대나 예속되어있을 정도이다. 여단급 예하 부대로는 '''[[한국군 전차부대(한국전쟁)|국군 최초의 전차대대]]를 예하에 둔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인 '''[[제1기갑여단]]'''과 '''[[제5공병여단]]''', '''[[제5포병여단]]''', '''[[제5군수지원여단]]''' 등이 있으며 특히 '''제5포병여단'''은 '''대한민국 국군 최강의 화력'''을 가진 포병부대로 명성이 높다. 여담으로 이야기 하면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가 [[제7기동군단]]으로 편제가 바뀌기 전에 여기 5군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작전계획지역상으로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은 아직도 제5군단의 영향을 받고 있다. 물론 상위 명령 계통상으로는 제7군단이 바로 위에 상급 부대지만 작전계획지역상으로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은 제5군단 작전계획지역 내에 있는 부대로서 지역 내 상황이 발생시 제7기동군단의 상황이 끝났어도 제5군단의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면 훈련은 계속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