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9공수특전여단 (문단 편집) == 상세 == [[12.12 군사반란]] 당시 '''서울 근교 부대 중 유일하게 반란군에 협조하지 않고 [[대한민국 육군본부]]의 지휘를 따르던 부대였다.''' 당시 제1, 3, 5 공수특전여단장[* 당시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박희도]] 준장(육사 12기), 제3공수특전여단장은 [[최세창]] 준장(육사 13기), 제5공수특전여단장은 [[장기오]](육사 12기)로 모두 [[하나회]] 멤버였다.]과는 달리 제9공수특전여단장이었던 윤흥기 [[준장]]은 [[하나회]] 출신이 아닌 [[갑종장교]] 출신이어서 하나회의 회원들로 이루어진 [[신군부]]의 영향력 안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신군부]] [[전두환]]측의 명령이 아닌, 본연의 정상적인 명령 계통에 따라 [[육군특수전사령관]]인 [[정병주]] 소장의 명령에 따랐다.[* 단 [[노태우]]와는 인연이 있었다. 전임 여단장이 노태우였기 때문이다.] 반란군을 제압하기 위해 [[경복궁]]을 향해 출동하였으나, 그쪽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반란군과 육군본부 사이에서 맺어진 일명 '신사협정'[* [[서울특별시]] 내에서의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맺어진 협정이었다. 물론 이 협정을 먼저 제시했던 [[전두환]]이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었건만 육군본부 측은 이를 큰 의심없이 받아들여버린다. 여담으로 이 사건은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도 묘사가 되었다.]으로 인한 육군본부의 회군 명령에 따라 다시 부대로 복귀한다.[* 만약 그 때 신사협정이 안맺어져서 육군본부가 회군 명령을 내리지 않아 제9공수특전여단이 그대로 경복궁으로 갔더라면 전두환을 위시한 [[12.12 군사반란|반란군의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역사적 가정을 상상하는 이도 일부 있다. 그러나 [[수도기계화보병사단]]과 [[제26기계화보병사단|제26보병사단]]이 출동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 예하 [[제1경비단|30, 33경비단]]과 [[제9보병사단]], [[제20기계화보병사단|제20보병사단]]이 반란군 주력이라, 제9공수특전여단이 그대로 돌입했어도 큰 화력이 없고 인원도 적은 [[특수부대]]의 특성상 훨씬 많은 병력수와 화력을 갖춘 반란군측 정규전 부대들을 모두 이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만약 특전사가 아니라 대규모의 [[보병부대]]나 [[기계화보병|기계화보병부대]]가 진압군으로 출동했더라도 서울 시내에서 현실적으로 대규모의 병력과 화력을 갖춘 아군끼리 대형참사를 야기시킬 치명적인 전투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제9공수특전여단이 특수부대로서의 장기를 활용해서 보병부대와의 정면 충돌이 아닌 기습으로 경복궁 제30경비단을 신속하게 장악하고 반란군 지도부를 싹 체포했다면 반란군측이 대규모 정규전 부대들을 미처 동원하기 전에 반란이 진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있다. 반란군 측에서도 [[제1공수특전여단]] 소속의 얼마 안되는 병력이 국방부와 육군본부을 기습하여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위시한 대응군 지도부를 신속하게 체포함으로써 더 이상의 국군간 큰 충돌 없이 반란을 성공시켰듯이 말이다.][* 수도경비사령부에도 야포단이 있었고 경복궁에 포를 조준만 했을 뿐 쏠 수는 없었다.][* 제9공수특전여단의 출동 소식을 듣고 [[노태우]]가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하고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1980년대 이후로는 제9공수특전여단 역시 [[하나회]]에서 철저히 장악하는 부대가 된다. 12.12 군사반란이 끝나고 며칠 후 윤흥기 준장이 경질되고 대신해서 하나회 출신인 [[이진삼]] 준장(육사 15기)이 [[여단장]]으로 부임했다.[* 같은 맥락에서 같이 장악되었던 부대가 [[제9보병사단]]이다.] 비단 제9공수특전여단 뿐 아니라 사실상 [[대한민국 육군]] 전체가 하나회에 의해 장악된다. 여담으로 현재 [[육군특수전사령부]] 휘하 5개 공수특전여단들 중 부대 역사 면에서는 가장 깨끗한 부대이기도 하다. 12.12에 동원되어 반란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1공수특전여단]],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을 다수 저지른 [[제7공수특전여단]]과 [[제11공수특전여단]], 반란과 학살 모두에 가담한 [[제3공수특전여단]]과 제5공수특전여단 (현 [[국제평화지원단]])에 비하면 제9공수특전여단은 그러한 흑역사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