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량/논란 (문단 편집) == 인사정책에 실수가 있었는가? == 제갈량은 사람을 씀에 있어 신상필벌을 명확하게 하였으나 비록 단점이 있더라도 장점이 있는 관리의 장점을 아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장완]]이 일을 태만히 해 유비의 노여움을 사 처벌당할뻔 했을때 제갈량이 "장완은 국가의 그릇이지, [[태수|백리를 다스릴 인재]]가 아닙니다. 그의 정무 처리는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있으며 겉모습을 장식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습니다. 원컨대 주공께서는 다시 살펴 주십시오." 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어떤 사람이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 단점이 있더라도 그 재주를 살려 아껴서 쓰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또한 당시 젊은 인재들이었던 [[비의]]나 [[동윤]], [[강유]]를 아껴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기도 했다. 유선이 즉위하자 익주목이 된 제갈량은 성도 남쪽에 높은 대를 쌓아 각지의 선비들을 초청했고, 몸소 익주 출신의 선비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등용했다. 그전에도 익주 출신 선비 [[양홍]]과 [[하지(삼국지)|하지]]를 적시적소에 잘 쓴 것 때문에 서쪽 익주 사람들은 모두 제갈량이 당대 인물의 능력을 전부 발휘할 수 있도록 기용한 것에 감복했다. 제갈량의 영향과 용인 아래에서 그의 뒤를 잇는 촉한의 군신들은 청렴하고 검소하게 지냈다. 그의 뒤를 이은 [[비의]]나 [[강유]] 모두 검소한 인물이었다. 비록 법정과 의견은 다른 편이었으나 그의 사람대함에 있어 야박한 태도를 감싸주고 그의 지모를 중용하였고[* 유비 입촉 후 법정이 잘난 채 하면서 타인을 하대하자 사람들이 제갈량에게 법정 좀 어찌 해줘라라고 요구했는데 제갈량은 그 동안 법정이 힘들게 살았을텐데 이 정도는 봐주는 것이 어떠겠느냐고 말했다. 연의에서는 추가적으로 이를 들은 법정이 스스로가 부끄러워 다시는 그런 행동을 안했다고 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위연과 양의의 갈등에서도 그 두명의 재주가 아까워 어떻게든 둘을 화해시키려고 했던 점만 봐도 그러하였다. 또 재상의 지위에 올라서도 손수 인재들을 찾아다니며 덕망과 재주가 있는 사람들을 관리로 기용했다는 점에서 인재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발굴된 인재들은 제갈량 사후에도 국력이 부족한 촉을 단단하게 지탱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인성과 능력을 고려해 관료의 성격이나 능력에 따라 알맞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려고 노력했다 할 수 있다. 당장 출사표에서 '[[곽유지]]와 [[비의]], 시랑 [[동윤]] 등은 모두 선량하고 진실하오며 뜻과 생각이 고르고 순박하여 선황제께서 발탁하시어 폐하께 남기셨사오니, 아둔한 신이 생각하건대 궁중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그들에게 물어보신 이후에 시행하시면 필히 허술한 곳을 보완하는 데 크게 이로울 것이옵니다.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실이 맑고 치우침이 없으며 군사에 밝으니 쓰시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던 것처럼 아직 미숙한 군주 주위에 능력과 인성이 되는 인사들을 배치해 보좌를 담당케 했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특히 동윤 같은 경우엔 내부기강을 잡는데 있어서 탁월한 인재 선정이었다.] 그러나 유비도 걱정한 [[마속]] 같은 최악의 실패 사례도 있으며 이렇게 최대한 다독이다가 결국엔 북벌에 차질을 빚게 만든 이엄의 예, 결국 그 성격을 고치지 못하고 제갈량 사후 반목하여 서로 파멸한 위연과 양의의 사례도 있듯, 제갈량의 인사에도 분명 실책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익주 1개주로 국가를 운영해야 했던 촉한과 제갈량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인사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형주를 상실하기 이전 상황을 생각해봐도 유비는 모든걸 털리고 번구에서 웅거하던 시절에서 익주를 영유하기까지 고작 6년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렇게 급속도로 확장된 조직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고양이 발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었다. 형주 상실과 이릉대전 이후로는 뭐 말 할 것도 없다. ~~촉의 맨파워를 제로로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 생각하면 제갈량 입장에선 나라 안 들어엎은게 용하다~~ 마속 인선만 해도 가정에 배치할 지휘관급 인사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었는 지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