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첨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제갈량의 [[늦둥이]] 아들로 제갈량이 무려 '''47세'''였을 무렵에 태어났다.[* 어머니 황부인 또한 당시 적은 나이는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 황부인의 생년이 불명이기는 한데, 제갈량이 형주에 살던 시절 결혼했었으므로 227년 시점에선 나이가 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여성의 가임 연령을 고려하면 제갈량보다는 확실히 연하였을 확률이 크다.] 나이에서 볼 수 있듯이 제갈량에게 오랫동안 친자식이 없어 형인 [[제갈근]]의 차남인 [[제갈교]]를 [[양자(가족)|양자]]로 들였지만 제갈교는 아들로 [[제갈반]] 하나만 남긴 채 요절했다. 훗날 [[제갈각]]의 일족이 멸문되고 제갈씨가 복권되면서 제갈반은 동오로 가서 제갈근의 가문을 이었다. 이런 불운에도 불구하고 친자가 태어나 대를 이을 수 있었으니 제갈첨에 대한 제갈량의 기분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듯. 제갈량이 제갈근에게 보낸 서신에 제갈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제갈)첨도 이제 여덟 살인데 총명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이 애가 너무 일찍 숙성하여 큰 인물이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이 번역은 신원문화사에서「제갈량집」을 번역한 <와룡의 눈으로 세상을 읽다>에서 발췌했다.][* 원문: 瞻今已八歲而聦慧可愛,嫌其早成,恐不為重器耳。] 「[[제갈량집]]」에 남은 제갈근과의 서신 중 대부분이 사무적인 내용인데, 유독 이 서신에서는 어린 아들이 총명하고 사랑스럽다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팔불출|늦둥이 아들이 매우 귀여웠던 모양]]. 다만 안타까운 부분이라면 제갈량이 이 편지를 보낸 게 다름아닌 '''234년''' 2월, 즉 '''[[제갈량]]이 사망하기 반 년 전'''이다. 제갈량이 대군을 이끌며 마지막 북벌을 위해 야곡을 지나면서 형 [[제갈근]]에게 보낸 서신이다. 234년 8월, 제갈첨이 겨우 8살 때 아버지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사망했다. 나이도 나이지만 제갈첨이 태어난 227년에 [[제갈량의 북벌]]이 개시된 걸 생각하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갈량은 이런 아들에게 살면서 도움이 될 만한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계자서(誡子書)를 지어서 남겼는데 여기서 그는 담박(淡泊)과 영정(寧靜)을 강조했다. 제갈량은 그 글에서 "무릇 군자(君子)는 고요함으로 자신을 수양하고, 검소함으로 덕을 키운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非淡泊無以明志), 고요하지 않으면 먼 곳에 이르지 못한다(非寧靜無以致遠)"고 말했다. 이는 [[소학]]에도 나올 정도로 잘 알려진 말이 되었는데 '담박'이란 깨끗하고 고요함을 유지해 스스로 담담함을 이루는 경지다. '영정' 또한 마음에 선입견을 두지 않아 평온함을 유지하는 상태다. 모두 흔들림 없는 물에 비유한 마음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마음 상태가 담담하지 않으면 뜻을 제대로 세울 수 없고 외부의 선입견에 휘둘려 마음을 잡지 못하면 원대한 목표 또한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뜻을 집약해 표현한 위의 명구는 '담박명지(淡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이라는 네 글자 형태의 성어로 정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