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탄 (문단 편집) === [[조방]] 시대 === 조예 사후 [[조상]]이 정권을 잡자 친하던 하후현과 등양이 득세해 정시 초년 다시 어사중승, [[상서(관직)|상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뒤에 양주자사가 되어 소무장군까지 올랐고, 조상 일파가 실각하는 와중에도 [[사마의]]는 그를 계속 기용해서 [[왕릉(삼국지)|왕릉]]을 토벌할 때 진동장군에 산양정후의 작위까지 받고 가절도독양주제군사(假節都督揚州諸軍事)하고, 산양정후(山陽亭侯)로 봉했다. 또한 사마씨 집안과도 인척 관계를 맺어 사마의의 아들 [[사마주]]에게 딸 [[제갈태비]]를 시집보냈고, 막내아들 [[제갈정]]은 훗날 진 무제가 된 [[사마염]]과 어려서 서로 친하게 지냈다.[* 제갈탄의 또다른 딸은 왕릉의 아들 [[왕광]]의 부인이 되었다. 다만 선후관계는 불명으로 어느 쪽이 언니인지 알 수 없다. 중국 위키에서는 장녀가 사마주의 부인인 [[제갈태비]], 차녀가 왕광의 부인이라 되어 있다.] 제갈각(諸葛恪)이 동관(東關)에서 병사를 일으켰을 때, 제갈탄을 파견하여 군사들을 지휘하여 토벌하러 가도록 했다. 그는 적과 싸워서 패하고 돌아왔으므로 진남장군(鎮南將軍)으로 전임되었다. [[사마사]]가 정권을 잡아 [[오나라]]의 동흥을 공략하려 하자 [[호준]]과 함께 나아가 싸웠으나 [[제갈각]]이 펼친 기습작전으로 패해 [[관구검]]과 자리를 맞바꾸는 형식으로 벼슬이 깎여 진남장군 예주도독을 맡았다. 사실상 같은 지위에서 자리만 바꾼 것이고 동생 [[사마소]]의 작위를 깎은것 외엔 처벌하지 않겠다고 한 사마사의 말대로 처벌 같지 않은 처벌이었지만 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