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경공(23대) (문단 편집) === 네 나라의 사신들을 모욕하다 === 제경공 6년(기원전 593년) 10월, 진(晉)은 [[극극]]을, 노(魯)는 [[계손행보]]를, 위(衞)는 [[손양부]]를, 조(曹)는 공자 수를 사신으로 제나라에 보낸다. 이들에겐 각자 특징이 있었는데, 진나라의 극극은 애꾸눈이었고 노나라의 계손행보는 대머리였으며 위나라의 손양부는 절름발이였고 조나라의 공자 수는 꼽추였다. 네 사람이 동시에 제나라를 사신으로 도착하자 제경공은 이들을 맞이해 접대한다. 문제는 제경공이 준비한 마부들이었다. 애꾸눈인 극극의 수레는 애꾸눈이 몰고, 대머리인 계손행보의 수레는 대머리가 몰았으며, 절름발이인 손양부의 수레는 절름발이가 몰았고, 꼽추인 공자 수의 수레는 꼽추가 몰게 했다. 이런 행색으로 제나라 도성에 입성하는 사신단을 보자 제경공의 어머니인 소(蕭) 태부인[* 선군인 혜공의 아내. 제후(諸侯)의 아내를 일컬어 부인(夫人)이라고 한다.]은 누대 위에서 이를 구경하다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해 큰 소리로 폭소하고 만다. 이에 네 명의 사신들은 이 소리를 듣고 매우 불쾌해하였다. 특히 극극은 대로하여 제나라에서의 일을 마친 뒤 진나라로 돌아가 임금에게 제나라를 쳐줄 것을 청하였지만 시기가 적절치 못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한다. 결국 극극은 나중에 제나라에서 사신을 4명 보내자 그들을 죽이는 걸로 울분을 표했다.[* 다만 이는 사기의 기록으로 춘추시대의 사건에 대해서 더 신뢰도가 높은 좌전에는 사신을 죽인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제경공 7년(기원전592년) 봄, 제경공이 노나라 북쪽 변방을 공격했다. 위나라의 손양부가 군을 이끌고 침략하자 신축(新築)에서 교전하여 대승을 거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