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경공(26대) (문단 편집) === 경봉의 최후 === 최저를 속여 제거한 경봉도 오래 권력을 누릴 수 없었다. 그 배경은 바로 이러했다. 제경공 2년(기원전 546년), 경봉은 사냥을 나갈 때 공손조, 공손만이 [[전무우|전무우(陳無宇)]]와 함께 경봉의 일가를 살해하려 했다. 이때 아들 경사(慶舍)가 전권을 잡은 틈을 타[* 경봉은 실권은 자기에게 있어서 안전하다고 믿고 아들 경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냥가거나 주색 잡기에 빠져 지냈다.] 전무우가 경사를 죽여 버렸다. 이에 경봉은 위기에 빠졌다. 바로 이 때를 노리고 포씨[* [[포숙]]의 후손.], 고씨[* 제환공 시대에 활약한 고혜의 후손인 고씨가 아니라 제혜공의 후손인 고씨이다.], 난씨[* [[진(희성)|진(晉)나라]]에서 망명한 난영(欒盈)의 자손이 아니다. 제혜공의 후손으로 진나라의 난씨와는 관계없다.] 등이 가세하니 경봉은 결국 [[노나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제나라의 실권자들이 노나라를 압박하니 노나라는 제나라보다 국력이 약해서 결국 경봉을 축출했다. 그리하여 강력한 오나라로 달아났다. 그리하여 경봉은 거기서 부귀 영화를 누렸다.[* 일단 제나라의 권력의 핵심에 있었으니 그로부터 얻을게 있을거라 여긴 오나라의 조치였다. 멀리 갈 거 없이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망한 뒤 일본으로 달아난 백제 지배층이 대우를 잘 받은 것도 이러한 이유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누리지 못했는데, [[초영왕]](楚靈王)이 아우인 웅기질 즉 훗날 [[초평왕]](楚平王)을 보내 경봉을 살해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버려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 ~~얼마나 인심을 잃었으면 시체를 내다 버렸는데 좋아할까?~~ 그리고 안영이 경봉의 뒤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