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경공(26대) (문단 편집) === 노나라와의 관계 === 제경공 26년(기원전 522년), 위나라(衛)에서 난이 발생해 [[위영공]](衛靈公)이 교외로 달아났다. 같은 시기에 오나라가 송나라를 치자 제나라가 그것을 구해 주어 사실상 패자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안영과 함께 노나라에 들르게 되어 노나라에서 예법을 물었다. 제경공 31년(기원전 517년), [[노소공]](魯昭公)이 계씨의 난을 피해 오자 그가 노나라를 치려고 해서 제경공은 은읍을 차지해 거기에 노 소공을 머물게 했다.[* 아마도 이 무렵의 일로서,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물었더니 공자가 했다는 대답("君君臣臣父父子子")이 유명하다. '당신네 나라를 보면,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라고 에둘러 디스한 말이었으나, 제경공은 [[유체이탈 화법|그저 '좋은 말씀이오'라고 대꾸하고 만다.]] ] 제경공 32년(기원전 516년), 혜성이 떨어지자 안영은 제경공의 사치와 폭정을 간했다.[* 제경공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저 안영의 말을 전적으로 따랐기 때문이다. 사실 제나라는 전무우의 사례로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제경공 45년(기원전 503년) 가을, 제경공은 [[정헌공|정헌공]](鄭獻公)과 정식으로 회맹했다. 제경공 47년(기원전 501년), 노나라의 [[양호#s-2|양호(陽虎)]]가 계씨에게 쫓겨나자 제경공이 포견의 말을 듣고 그를 구금하려 했다. 그러자 그걸 눈치챈 양호는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한때 권력 잡은 사람답게 눈치는 9단이구먼.~~ 제경공 48년(기원전 500년), [[노정공]](魯定公)과 협곡에서 회맹하자 이서는 잔치에서 내나라 사람[* 정확히는 내나라 유민이다. 내나라는 제 영공 때 이미 망했기 때문이다.]에게 음악을 연주하게 해 그 틈을 타 노 정공을 잡고자 했다. 그런데 그 음악의 내용도 노나라 입장에서 참 고약했던게 노 환공이 자신의 부인인 [[문강]]이 제 양공에게 [[NTR]] 당한 것을 까는 내용이라 [[공자]](孔子)는 그 속 뜻을 완전히 파악해 그들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노나라 땅을 돌려달라고 요청하니 제경공은 공자의 기백에 눌려 결국 들어주고 말았다. 이 해에 안영이 죽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