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국 (문단 편집) ==== 한자문화권 ==== [include(틀: 한자문화권의 황제국)] [[한자문화권]]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제국이란 단어는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 관념적으로 황제는 한 나라(國)에 국한되는 영역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쓰는 황제라는 표현은 [[진시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어원은 [[삼황오제]]이다. ] 그러나 시황제의 진을 계승한 후대 왕조는 작은 규모의 정권까지 통틀어도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명목으로나마 [[제3의 로마|로마 제국의 후예]]만을 공식적인 제국으로 인정해 주는 유럽과는 구분되는 점이다. 즉, 서양의 황제는 '로마 제국의 후예'라는 '''정통성'''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면, 동양의 황제는 '천하를 제패한 자', 그 중에서도 '''중원을 제패하고 통일한 국가'''가 그 중 가장 주된 조건이었다.[* 사실 통상의 경우 정통성은 동양이 더 따졌는데 왜 황제로서의 자격은 유럽이 더 정통성을 따지냐는 의문이 드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 이유는 [[교황]]의 존재였다. 교황이 직접 인정해야만 로마의 후예를 자처할 수 있었던 유럽은, 만약 "이전 제국(로마)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내가 뒤집겠다!"라는 식의 발언을 할 경우 교황에게 [[파문]] 당하고 가문이 풍비박산 났다. 반면 동양에서 교황의 포지션은 천자, 즉 중원의 패자 그 자체였다. 그래서 중원을 통일한 자가 "이전 왕조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내가 뒤집어엎겠다!"고 하면서 명분론을 통해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할 수 있었다.] 물론 북방의 [[유목민족]] 국가들과 [[고구려]]는 조금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주변국에겐 연호와 직책(주로 왕이나 장군)을 하사하는 등의 조공 책봉 형식을 취했다. 천자국의 사상적 원칙상 주 목표 중 하나가 마치 로마제국처럼 자신들의 발달된 문화를 보급하고 문명을 전파하고 교화시키는 것이었는데. 초기 중원 왕조는 비교적 이 역할에 충실했고[* 이것은 문화적 가치하에 볼 수 있고, 실제로 중원 왕조는 중화문에 대한 정벌을 질서에 배치되는 토착 문명에 대한 멸시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어디까지나 자국의 권위에 배치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관대함을 베풀었고, [[전한]]의 [[왕검성 전투]]나 [[당나라]]의 [[고구려-당 전쟁]]의 예와 같이 자국이 구축한 질서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 무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는 중원 왕조의 군주와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유학 교육을 받아 고도의 철학적 소양을 구비한 것에서 기인한다. 유학의 핵심 이론이 중화가 가장 존귀하고 이적은 비천하기에 마땅히 중화가 이적을 교화해야 한다는 '화이론'과, 천하의 지배자인 천자(天子) 밑으로 모든 이적의 수장들이 마땅히 복속해야 하며 이를 거부하는 자를 정벌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방벌론(放伐論)'이었다. 제국의 통치자 입장에서는 유학적 가치하에 제국의 근본이 되는 핵심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이적에 대한 정벌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애초에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동아시아권에선 상대적으로 문물이 발달되었던 중원 이외 국가의 칭제에 대한 제약이 매우 강했으며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대륙|중원 대륙]]을 노리는 북방민족들은 [[천왕]], [[황제]] 등을 칭하면서 제국을 표방하였다. 또한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 제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이미 전세계에서 제국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나라였으며,[* 사실 이 상황은 그 당시에 있었던 '''아시아주의'''라는 사상이 등장했던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주의]] 문서로.] [[몽골 제국]] 같은 경우에도 세계 제국이었기 때문에 [[원나라]]의 존재 여부에 관계 없이 제국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베트남]] 같은 경우는 중국에 대해선 어디까지나 [[외왕내제]]의 체제를 갖고 있었지만 [[동북아]]와 [[동남아]]에 걸쳐 있었던 애매한 정황과 가급적 당시의 [[칭호]]를 존중해 주는 현대 학계의 동향에 따라 제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중국의 황제에게 영지를 분봉받은 경우나 [[조공]] 책봉을 통해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주변국들은 한 단계 아래인 [[제후국]]으로 칭해졌으나, [[흉노]]등의 북방 기마족과의 관계에서는 세력의 우열에 따라 달라졌다. 중원 한족 왕조가 강하면 용병으로 일을 하거나 약탈한 것들을 바쳤고 거꾸로 북방 유목민이 강하면 한족 왕조에 조공을 받았다. 그 결과 중국[* 양자강 유역 내지는 그보다 남쪽에 위치, 한족계열 왕조.]과 동격의 황제를 칭하고, 중국에서도 이를 인정했던 북조 국가들 및 [[요나라]], [[서하]], [[금나라]] 등이 나왔다. 결국 동양의 "황제"는 서양의 황제와 달리 세속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문화와 종교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즉, '''교황'''에 가까운 존재였다. 교황이(실질 영토 자체는 작을지언정)전 [[기독교]]인들의 왕, 왕 중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서유럽]]에 영향력을 떨치며 [[종교개혁]] 이전까지 명실공히 서유럽의 지배자나 다름없었듯이, 동양의 천자 역시 모든 [[제후]](왕)들의 상전이자 하늘의 아들으로 전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끼치며 군림했다. 한때 개항기의 서구 열강조차 형식적으로는 조공국의 모양새를 취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었으나, 서양의 외교 사절이 공식적으로 조공국임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러시아어/만주어 조약문에서 알 수 있듯이 [[루스 차르국]]과 [[청나라]]는 서로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었다. 이와 관해선 영국과의 외교사가 유명하다. 영국 최초의 대중국 사절인 매카트니 경은 끝내 청나라 황제 앞에서 [[삼궤구고두례]]를 거부함과 동시에 조공국임을 부인하여 외교관계 수립도 무산된다. [[아편전쟁]] 이후 결국 서양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하게 되었을 때 청나라는 대등한 관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역사에서는 [[연호]]를 사용하거나 제후왕을 임명하여 국가원수가 왕중왕으로 군림하며 [[태왕]], 황왕, [[대왕]], 황제 등의 칭호를 취하는 등 제국의 위상을 표방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고구려는 많은 학자들이 제국으로 보는 편이다. [[태왕]]이라는 칭호에 함의된 [[황제|제국의 지배자로서의 위상이 주목받는 편이며]] 전성기 시절 [[만주]]와 [[한반도]] 일대의 패권을 행사하고 동아시아의 주요 세력으로 군림하는 등 한국사에서 강대국, 제국이라는 단어에 가장 부합하는 시대였다. 백제 역시 왕중왕으로 군림하고 황제의 칭호를 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후백제]], [[후고구려]] 역시 고고학적으로 연호를 내걸었던 것이 확인되고 문헌적으로도 단지 일국의 지배자가 아닌 그 이상을 표방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그리고 이들을 통합한 고려는 전반기에 [[천자]],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더러 제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여[* 대표적으로 광종은 황제 칭호와 더불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외왕내제]](外王內帝)로 분류되기도 한다. 조선의 [[고종(대한제국)|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불과 13년 만에 일본 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만다. 대한제국은 현대 역사학에서 정의된 '다민족, 다문화를 지배 하에 두고 일정한 권역에서 패권을 장악한 국가'라는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아 통상적인 의미의 제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참고로 소설가 [[현기영]]은 당시 [[장지연]]이 '조선이 제국의 자격이 있는 이유'에 대해서 글을 기고하기를 "북쪽으로는 [[여진족|여진]]을 가지고 있고 남쪽으로는 [[탐라]]를 가지고 있으므로 충분히 제국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하며, '내부 식민지'로서 [[제주도]]와 [[함경도]]의 존재가 조선 왕조 입장에서는 국왕 아래의 동등한 [[인민]]이라기보다는 왕조에 복속되어 식민 지배를 받는 인민 이하의 신민 같은 존재였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 주장도 문제가 있는 것이 함경도는 조선왕조의 [[함흥본궁|본향]]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이었고, 차별받기로 따지면 [[평안도]]도 만만치 않았으며, 제주도의 경우는 식민지라기보단 고립되어 있는 섬의 특성과 유배지로 쓰인 역사적 배경의 영향이 컸다. 무엇보다 제국 선포의 공식적인 명분은 [[삼한일통]]이기 때문에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주장이다.] [[일본]]의 경우는 중국의 천자(天子)처럼 [[천황]]이라는 독자적인 칭호를 쓰며 역사 내내 줄곧 독자 연호를 써왔으나, 전근대 동양에서 유일한 황제는 [[중원]]의 황제였으므로 국제적으로 제국으로 인정받는 것은 [[일본 제국]] 시기가 되어서야 가능했다. [[베트남]]의 경우도 외왕내제를 내세워 내부적으로는 황제를 칭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