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국주의 (문단 편집) == 제국주의 국가 목록 == [include(틀:식민제국)] [[21세기]]에도 세계의 [[정치]]/[[경제]]/[[문화]] 등 전반적인 질서는 식민제국이었던 [[강대국]]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식민제국에 지배당했던 대다수의 국가들은 현재에도 식민지배국들이 구축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인도]], [[대한민국]], [[브라질]] 등의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력에 도전할 만할 국력을 가진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 [[포르투갈 제국]] 제국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발전하고 가장 먼저 몰락한 사례이며 유럽 제국주의의 시초이다. 대항해 시대를 가장 먼저 열고[* 스페인이랑 별 차이가 안 나는 시기지만 엄밀히는 포르투갈이 먼저다.] 가장 처절하게 몰락했다.[* 심지어는 뒷날 스페인한테 지배당하고 그 다음에는 영국에게 식민지 무역에서의 소득마저 삥뜯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기술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영토도 별로고 내세울 게 없다. 애시당초 신대륙에서의 이익도 제대로 얻어먹은 건 스페인이지 포르투갈이 아니며,[* 그나마 스페인은 신대륙에서의 착취로 얻은 거라도 많지만 포르투갈은 그것조차 스페인에게 수시로 빼앗겼다.]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는 자기보다 훨씬 작은 네덜란드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타협하는 와중에도 [[동티모르|티모르 섬 반쪽]]만 남겨 달라고 하는 비굴한 모습도 보여줬으며, 20세기에 인도가 독립한 후에도 옛날에 조차한 [[고아(인도)|고아]] 지역을 계속 지배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고수하다 결국 인도군에게 참패하고, 주둔군 수천 명이 포로가 되는 굴욕을 당했다.[* 당시 인도군에게 밀리던 포르투갈은 유럽 안보 기구인 NATO에 포르투갈을 도와 인도와 싸워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했다가 철저히 무시당했다. 반면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큰 손실을 입고 괜히 또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았던 프랑스는 별 마찰 없이 [[프랑스령 인도]]에서 발을 뺐다. 한편 이는 영국에도 교훈이 되어서, 결국 영국은 홍콩에서 순순히 물러났다. 다만 홍콩 체제 보장 기간인 2047년까지는 이해관계가 아직 남아 있어서 2014년의 홍콩 시위,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등 홍콩의 인권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중국을 압박하였다.] 또한 1970년대에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등 독립하려는 아프리카 국가에 공산주의 제재를 핑계로 군대를 보내서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엄밀히 말하면 포르투갈은 산업혁명 이전인 18세기에 몰락해서 일반적인 제국주의 국가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인도양과 브라질을 지배하던 엄연한 식민제국이었다. * [[스페인 제국]]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로 재빨리 신대륙을 개척해 막대한 부를 얻었다. 한때 브라질, 가이아나, 수리남, 벨리즈를 제외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대부분을 스페인이 차지했다. 다른 서양 제국주의 국가와 비교해서 그나마 온건한 편이기는 했어도, 스페인의 식민지배 역시 가혹했다. 가령 전세계 은 채굴량의 60% 이상이 쏟아져 나와 스페인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준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에서는 원주민들이 당시 유행하던 수은 아말감법에 강제로 동원됐다. 따라서 [[광산]] 주위 원주민들은 수은 중독과 노동 착취로 죽어갔다. 당시 '''유럽에 거대한 경제 팽창을 일으킨 신대륙의 막대한 광물들은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 착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한편, 스페인은 북아메리카 지역의 멕시코나 미국 서남부 지역(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플로리다 등)도 식민지로 삼았다. 아프리카의 [[서사하라]] 지역과 [[적도 기니]]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훗날 식민지들이 하나둘씩 독립해나갔지만, 오늘날에도 [[스페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5억이 넘으며 옛 식민지들은 경제/문화적으로 스페인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 * [[프랑스 식민제국]]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남은 몇 안 되는 전통적인 제국주의 국가.[* 현재도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프랑스를 거치지 않고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고, 이 지역의 국민들 사이에서는 프랑스와 프랑스가 밀어주는 지배층에 대한 증오가 높다. 동시에 워낙 언어와 문화 면에서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터라 가난한 자국을 벗어나 프랑스로 이민이나 취업을 가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한 점이다.] 영국과 가장 치열하게 영토 경쟁을 벌였고 지금도 전세계에 해외 영토가 있으며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북서 아프리카, 인도차이나 반도, [[기아나]]를 점령하고 [[청나라]]에도 여러 조계지를 건설해 착취했다. 많은 식민지 독립 운동가들을 프랑스에서 직도입한 기요틴([[단두대]])으로 참수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식민 정책은 악명이 높아서 과거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겪었던 국가들은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같은 북부 아프리카의 [[아랍]]계 국가들이나 [[베트남]] 등을 제외하면 아직도 내전, 반란, 독재 등으로 국가가 제대로 기능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국가들이 상당하며 그나마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국가들도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피지배국에 대해 가혹했던 것은 물론, 본국 피지배층마저도 [[프랑스 혁명|세계 최초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왕정을 뒤엎어 버리고]] 공화정이 잘 자리잡은 [[노란 조끼 운동|현재까지도 프랑스 정부와 갈등을 겪을 정도]]로 프랑스 지배층의 피지배층 탄압 문제는 유럽 내에서도 심각했다. 게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외세에 의한 점령을 겪으면서도 종전 후 [[베트남]], [[알제리]] 같은 식민지들에서 일어나던 식민지 독립 운동을 전쟁을 일으켜 억누르려다 외교적으로 여러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군사적으로도 전쟁에서 패배해 본토에서 식민지에 집착하던 프랑스 제4공화국 정권이 붕괴된 이후에야 이들 식민지들의 독립을 인정하고 물러났다. 현재는 태평양의 몇몇 섬들과 [[프랑스령 기아나]]를 보유한다. * [[이탈리아 제국]] 이전에는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세력 다툼이 있던 지역이었다. 통일 이후에는 사보이아 왕가를 주축으로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었으며,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리비아]], [[에리트레아]]를 식민지로 가진 제국주의 국가였다. 파시스트 정당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집권한 이후 추축국 동맹에 가입한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 [[알바니아]]를 침략해서 점령하였고 이탈리아 반도 안의 내륙국인 [[바티칸]]과 [[산마리노]]를 압박했으며 나치 독일과 함께 북아프리카와 동부전선에서도 교전했다. 1943년 항복한 이후 1947년 모든 식민지의 권리를 포기했다. * [[네덜란드 제국]] 예로부터 무역 국가, 해상의 지배자로 유명했고, [[타이완 섬]],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수리남]], 미국 [[뉴욕]], 일본 [[데지마]], [[케이프타운]] 등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부 지역들을 비롯하여 의외로 여러 식민지를 보유했다. 특히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경우 본국보다 수십 배 거대했다. [[영국]]에 가려져서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자체적으로 [[동인도 회사]]도 운영하며 동남아와 인도양 일대를 지배한 강대국이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독립할 때 4년에 걸쳐 전쟁까지 치른 끝에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독립을 인정했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독립 인정은 냉전 시기 아시아 신생 국가들을 친미 진영으로 끌어들이고 소련의 개입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려던 미국의 압박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국은 나치 독일로부터 네덜란드를 해방시킨데다 [[마셜 플랜]]을 통해 네덜란드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었다. 한편 전후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식민지 관련 시대착오적인 정책은 나치에 의해 피해를 본 후에도 오히려 식민지에 강압적인 행보를 보인 비겁한 사례이기 때문에 비판받는 편이다. 특히 네덜란드는 [[안네의 일기]] 등을 출판하고 일제 위안부 피해에 대해서 역설하는 등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에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편인데 정작 그런 피해를 입은 네덜란드가 1940년대 말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인도네시아에서 가해자로 돌변하며 보인 탄압과 학살]]은 네덜란드의 도덕 외교를 위선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1975년 마지막 대륙 내 식민지인 [[수리남]]이 독립한 이후 남아 있는 [[아루바]], [[퀴라소]], [[신트마르턴]]은 명목상 네덜란드 왕국을 구성하는 구성국으로서 본국과 동일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 [[대영제국]] 이 분야의 '''끝판왕'''.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전 세계의 무려 4분의 1의 광대한 식민지를 가졌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이었다. 거기다가 영국은 당시에 개척한 미국이나[* 물론, 미국은 영국과의 마찰로 중간에 [[미국 독립 전쟁]]이후 떨어져 나갔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랑 [[뉴질랜드]]는 식민지가 아닌 자국 영토[*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경우, 잉글랜드와 한 섬 안에 있고 교류가 잦았으므로 강제 병합보다는 자연스러운 합병에 가까웠다.]라는 개념으로 개척했다. 거기다가 당시에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다.[* 당시 영국령 [[인도 제국]]은 현대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 등을 아우르는 거대 권역이었고 이 지역의 인구 자원은 영국의 다른 식민지 총합은 물론 중국보다도 더욱 컸다.] 이후 19세기~20세기 초반 당시 [[그레이트 게임]]으로 불리우는 대러 정책으로 [[러시아 제국]]과 가장 강한 대립각을 세우며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지속적으로 방해한다.[* 심지어 그레이트 게임은 [[방사능 홍차]] 사건이나 [[우크라이나 민주주의 방위 대여법안]] 등을 통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 이후 [[아일랜드|자국 영토]]가 1171년부터 계속된 피지배층 탄압과 [[부활절 봉기]] 유혈 진압을 못 견디고 독립 운동 끝에 1922년에 독립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겪고 2차 대전 이후 식민지를 줄줄이 상실하며 1997년 마지막 남은 [[홍콩]]마저 떨어져 나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중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별 마찰 없이 발을 뺀 사례도 있었고, [[케냐]]가 독립하려고 할 때 군대를 동원해 식민지 독립운동을 유혈탄압, 학살하는 실책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케냐가 영국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뒤 영국에서 프랑스가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군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프랑스를 비판하자 케냐에서는 "프랑스군이 알제리를 지배하면서 죽인 알제리 사람 수보다 적을 뿐이지 영국 너희들도 우리 나라를 식민통치하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을 학살한 국가일 뿐이다"라고 영국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현재도 영어나 국제 매너, 뛰어난 대중문화, 영국의 문화적 후손인 미국의 존재 등으로 전 세계에 소프트 파워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잔존 해외 영토는 영국군과 동맹인 자유 진영 국가들의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옛 식민지들과 동등한 관계로 연대하는 [[영연방]]을 이루고 있다. 홍콩의 경우 영연방은 아니지만 옛 식민지였던 역사로 인해 지금도 중국에 맞서 홍콩 인권 문제에도 개입하고 있다. 또 식민지보다는 교역지로 발전시킨 도시들의 경우 현재 세계의 주요 경제 중심지로 세계 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 [[덴마크 제국]]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페로 제도]] 같은 북유럽 일대에 영토를 많이 확보했으나, 타 대륙인 지금의 [[가나]] 해안 일부와 카리브 섬 일부, [[인도]] 일부 지역, [[안다만니코바르 제도]]를 지배한 적도 있었다. 특히 자체적인 [[동인도 회사]]를 갖추고 있었을 정도로 대외진출에 적극적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점령할 때 상대하기 가장 벅찼던 맞수는 [[프랑스]]였지만 의외로 덴마크와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경쟁의 승자는 결국 [[영국]]이었고, 덴마크는 인도 일대의 모든 식민지를 영국에게 넘겼다. * [[러시아 제국]] 몽골([[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200년 동안 받았으나, 독자적으로 힘을 키워 몽골을 몰아낸 뒤에는 옛 지배자 몽골에 버금가는 팽창주의를 선보였다. 원래는 모스크바 지역에서 몽골 지배자들에게 조공을 바치던 소규모 공국 중의 하나였으나[* 이 당시 모스크바 강 일대를 지배하던 모스크바 대공국은 다른 루스 계열 공국들로부터 몽골에게 공납할 세금을 걷는 역할을 얻었는데, 이 공납금을 야금야금 훔치는, 일종의 공금횡령을 통해서 루스 계열 공국 가운데 최대 세력이 되었다.] [[이반 뇌제]]가 다스리던 16세기 말부터 팽창을 시작하여 한때 자신들을 지배했던 몽골 세력 다수를 정복, 흡수하고[* [[청나라]]와 몽골계 세계를 나눠 차지하는 구도가 되었다. 그리고 타타르의 굴레라 불리는 200년 동안의 치욕을 철저한 탄압으로 갚아줬다. 이는 [[청나라]], [[카자흐]]족들과 태그를 짜서 실행된 [[준가르]] 학살에서 정점을 찍는다. 물론 준가르는 몽골제국의 주류 민족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북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이란 일부 지역과 만주, 청나라 북부, 북미 대륙 서해안(지금의 [[알래스카]] 일대)까지, [[대영제국]] 다음으로 큰 제국을 건설했다. 프랑스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몰락과 함께 러시아가 [[러시아 제국]]으로 본격적으로 강력해진 19세기 초반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대영제국]]의 가장 강력한 견제 대상이었고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다. 부동항 확보를 위해 [[조선]]에도 관심을 보인 몇 안 되는 제국주의 국가였으나 영국과 일본에 의해 이러한 관심은 좌절된다. 이후 큰 전쟁을 치루는 와중에 혁명으로 멸망하고 [[소련|사회주의 정권]]이 이를 계승한다. 새로 들어선 소비에트 연방은 [[블라디미르 레닌]] 시기에는 제국주의를 배격하고 식민지 독립을 지원하는 정책이 펼쳐졌다. 대표적인 것이 식민제국과 군벌의 밀착관계를 배격하던 중국의 [[쑨원]]을 도운 것이다. 하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의 집권 이후 [[독소전쟁]] 등을 겪으며 소련 또한 제국주의 국가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소련-러시아 제국주의는 21세기까지 이어졌다. [[소비에트 제국]] 및 [[러시아 제국주의]] 참조. * [[미국 식민제국]] 미국 독립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인들의 팽창욕 때문이었다. 식민지 시절 영국은 전비 부담으로 원주민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식민지인들이 진출하는 것을 막았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미국 독립전쟁]]의 한 원인이었을 정도로 미국은 호전적인 시작을 보였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마자 사법체계를 무시하면서까지 개척의 이름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들을 침략했는데, 이때 직접적으로 살상하거나 재이주 과정에서 죽은 원주민들은 수십만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원주민들이 이 때문에 연방 정부에 반감을 가졌고, 훗날 남북전쟁 때 남부에 대거 합류하였다.] 이를 합리화했던 말이 바로 [[명백한 운명]]이다. 심지어는 옛 주인인 영국 땅에도 눈을 돌려,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에 묶여 있었을 때, 영국의 캐나다까지 공격하려고 깊숙히 [[몬트리올]]까지 진출했다가 패배했고, 그 여파로 워싱턴 DC도 점령당하고 [[백악관]]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이때 체서피크 만까지 진출한 영국함대가 미국의 본진이라고 불리는 볼티모어의 매켄리 요새를 맹폭할 때 영국의 포격에도 꿋꿋이 휘날리는 성조기를 보고 [[미국 국가]]가 작사되었다.] 이후 당시의 초강대국 영국이 버티는 캐나다는 포기하고, 그 대신 혁명으로 어수선한 멕시코 땅에 눈을 들여 현재의 텍사스, 뉴멕시코, 유타, 캘리포니아, 콜로라도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빼앗았다. 태평양까지 진출한 미국은 [[매튜 페리(군인)|매튜 페리]] 제독의 [[흑선내항]]과 [[시모노세키 전쟁]]으로 적극적으로 일본을 식민지화하려 했으나 남북전쟁과 역량 부족으로 인하여 실패했고 이어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나 [[괌]], [[필리핀]] 등을 빼앗았으며 [[하와이]]를 무력으로 병합하는 제국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필리핀에서 학살한 원주민들만 수십만에 달하며, 당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스페인 제국주의를 비난했다가 자국인 미국도 별반 다를 것 없다며 극렬히 비난했다. 19세기에 미국은 먼로 독트린을 제창해서 유럽 국가가 남/북아메리카 문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먼로주의 근원에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독점적 종주권 야욕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은 20세기 후반까지 라틴아메리카에 정치적 개입을 하였다.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일본, 남한, 서독 등을 [[신탁통치|잠시 통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필요한 국가가 있으면 자본주의 쪽으로 무력 없이 회유하는 방법을 썼지만, [[파나마 침공]]과 [[그레나다 침공]] 등 무력을 사용한 사례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북베트남]]이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사례도 있으나, 이것은 [[통킹만 사건|미국이 먼저 공격당하여]] [[911 테러|반격을 할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논외. 물론 [[이라크 전쟁]]은 그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현재도 [[해외 주둔 미군|주요 전략적 거점에 미군이 주둔하며]] 정치, 경제, 문화적 영향을 주고 있으나 이것은 제국주의가 맞는지에 이견이 있기 때문에 약간 논외이다. 미국에서 국가 차원의 제국주의는 사라지거나 소프트 파워로 바뀌었지만, 노예 무역으로 대표되던 민간 차원의 제국주의는 미국 내 인종 갈등의 불씨가 되어 1865년 노예 해방 선언, 1964년 [[민권법]] 통과 등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Dole|돌]]이나 [[델몬트]],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의 경제력과 토지를 장악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등의, 플랜테이션이나 위탁 생산으로 대표되는 초국적 기업의 경제적 제국주의 문제 역시 심각하며, 중국과 함께 [[문화제국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심각한 나라이다. 한편 우주경쟁 시기 [[NASA|나사]]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 연구에 주력했지만, 미국 공군의 경우 X-20 다이노소어 우주 전폭기나 [[신의 지팡이]] 등 타국을 견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우주 무기들을 기획한 바가 있다.[* 물론 대부분 효율성과 비용 문제로 취소되었다.] * [[오만 제국]] 지금은 석유 수출과 관광업이 주업인 중동의 조용한 나라지만 한때 [[파키스탄]] 카라치, [[아라비아 반도]]부터 [[모잠비크]]까지 인도양을 주름잡고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과 함께 서아시아를 삼등분했던 꽤나 잘 나가는 국가였다. 하지만 식민지에 대한 취급이 가혹하고 악랄한 편이어서 한때 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탄자니아]]와 [[아랍에미리트]], [[케냐]], [[소말리아]], [[모잠비크]] 같은 아프리카, 중동 국가들에서는 지금도 오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포르투갈, 스페인과 함께 노예 무역으로 매우 악명이 높았다. 이들은 이란에 의해 세력이 위축된 이후에는 영국의 보호국이 되면서 제국주의의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전락했다. *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의 통치는 정복지의 현지 지배 세력 중 협력하는 자들은 기존의 권리를 인정해 주고 그렇지 않고 저항하는 세력은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식으로 급속도로 팽창할 수 있었다. 제국의 피정복민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밀레트(공동체)'로 분류하여 서로 다른 법으로 통치했다. 정교회 밀레트는 교회법이, 무슬림 밀레트와 유대인 밀레트는 각자의 율법에 기반한 법으로 운영되었으며, 세금 제도도 각 밀레트마다 다르게 적용되었다. [[아르메니아 학살]] 문제 또한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극단적인 튀르크 민족주의 뿐만 아니라, 지방의 영향력을 거의 갖추지 못한 오스만 제국 중앙정부와 현지 유력가들의 불협화음 또한 문제되었다. 물론 오스만 제국이 근대 제국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600여년간 지속된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서 이는 반동군주로 평가받는 압뒬하미트 2세의 통치 시기 이후 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동유럽국가와 아랍권 국가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한 '''억압자'''로서의 이미지는 다른 문제로, [[민족주의]]시대 이후 이들이 독립할 무렵, 그리고 신생 독립국가가 형성된 이후 신생국가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설정한 이데올로기적 설정이며, 21세기 들어와 오스만 제국의 다문화성, 지방 통치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피지배국들에 대한 지배도 절대 온건하지만은 않았고, 피지배국 속주 내부에 민족, 종교간 분열을 조장하며 통치하기도 해서 과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들은 [[불가리아]]나 [[그리스]], [[요르단]]처럼 일부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민족, 종교 분쟁들이 끊이지 않는 화약고들이 많다. * [[쿠를란트-젬갈렌]] 현 [[라트비아]] 지역에 존재했던 공국.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봉신국이었다. [[1651년]], [[1654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 있는 섬들을 식민지화하였다. 그러나 공국의 역량적 한계로 식민지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공국은 종주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주변 열강에게 분할되어 해체될 때 같이 멸망하였다. * [[독일 식민제국]] [[독일 제국]]은 통일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어 식민경쟁의 후발주자였다. 당시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탄자니아]], [[토고]], [[카메룬]]과 중국의 [[칭다오]] 등을 [[식민지]]로 보유했고 영국, 네덜란드와 함께 뉴기니 섬을 분할 점령하는 등 어느 정도 확보했으나, 타 유럽 주요국들에 비해 국가 체급 대비 식민지 수가 부족했다. 당시 아프리카 식민지 지역에서 현지 흑인 토착민들을 상대로 무임금 노동, 유혈 진압, 인권 탄압, 학살 등을 가해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벨기에 학살|중립국이었던 벨기에를 강제 점령하며 이 과정에서 학살을 가했다]]. 이후 독일 혁명으로 제정이 페지되고,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모든 식민지를 상실했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발칸 반도의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안다만니코바르 제도]]를 점령하거나 의화단을 진압할 때 군대를 파견하는 등 대외진출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앞서 진출한 식민제국들의 방해로 해외진출에서 크게 성과를 보지 못했고, 주로 유럽 내에서 영토를 넓혔다. * [[벨기에 제국]]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본국 영토의 80배에 달하는 콩고를 [[콩고 자유국|국왕 개인의 사유지로 점령했다]]. 그는 치하의 콩고 '자유'국에서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도 강하게 비판할 만큼 잔혹한 통치를 펼쳤을 뿐만 아니라 착취 행위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도 있었고 실제로 국익에도 도움이 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이익이 들어오는 대로 개인 재산으로 집어넣느라 본국인 벨기에의 발전에 돌아가는 이익도 거의 없었다.[* 벨기에의 건축 문화와 초콜릿 산업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긴 하였으나 이것 역시 레오폴드 본인의 사리사욕에서 출발한 부수적인 영향에 가깝다.] 레오폴드 2세가 워낙 콩고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켜서 독립한 지금도 콩고는 그 후유증을 겪는다. 결국 레오폴드 2세의 만행이 드러나자 1908년에 콩고는 벨기에에 강제로 반환되어 정부의 공식 식민지인 [[벨기에령 콩고]]로 바뀌었다. 한편 1차 세계 대전 이후 벨기에는 독일이 지배하던 부룬디와 르완다를 차지했다. 이후 식민통치를 하면서 [[투치족|투치 족]]과 [[후투족|후투 족]]의 민족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했는데, 이것은 훗날 [[르완다 내전]]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 [[일본 제국]] 보통 일본 제국을 제국주의 열강으로 분류하는 시기는 대략 [[청일전쟁]] 전후이다. 청일전쟁 이전에도 [[메이지 유신]] 무렵 [[아이누족]]이 살고 있는 북부 [[홋카이도]] 일대를 완전히 행정적으로 내지화하고[* 단, 홋카이도는 이미 15세기에 일본인의 진출을 시작으로 17~18세기 무렵이 되면 사실상 전역이 일본 영토인 상태였으며 19세기 초엽부터는 국제적으로도 일본령으로 완전히 공인되었기 때문에 다른 식민지와 1:1로 비교하기 어렵다. 다만 19세기 중후반 이후 일본인들을 집단적으로 이주시켜 아이누의 자치를 완전히 철폐하고 강압적인 중앙정부의 직할 통치를 시작했던 것은 맞다.] 실질적 독립국이던 [[류큐 왕국]](현 [[오키나와현]])을 병합하며[* 단, 홋카이도의 사례와 비슷한데 류큐는 형식적으로 17세기 초부터 [[사쓰마 번]]에 복속된 상태였기 때문에 조선, 대만 등과 달리 일본도 나름 역사적 연고가 있었던 지역이다.] 가까운 일본 열도 부근에서는 제국주의 정책을 폈다. 그리고 [[청일전쟁]]을 일으켜 본격적으로 열도를 넘어 대륙 차원에서의 확장 정책을 시작했는데 청일전쟁의 결과로 중국의 본토였던 대만을 빼앗고 이후 유럽 열강과 더불어 [[의화단 운동]]에도 개입했다. [[러일전쟁]]을 일으켜 러시아로부터 사할린 섬 남부 지역을 차지하고 [[대한제국]]을 차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1차대전 이후 독일령 칭다오와 남양 제도를 점령하고 1931년에는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운다.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대대적으로 침략했고 1941년에는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열강들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초기에는 동남아를 점령하고 미국 서부 해안에 산발적인 공격을 가하기까지 하며 선전하는 듯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반격이 이어지고, 총공세 끝에 패전, 모든 점령지를 잃고 본토는 미군에게 점령되었다. [[일본국 헌법]] 제정 후 지금의 [[일본국]]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