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노전쟁 (문단 편집) === 톈진회의와 선무군의 조직 === 강절전쟁이 계기가 되어 [[장쭤린]]의 [[봉천군벌]]과 [[차오쿤]], [[우페이푸]]의 [[직예군벌]] 사이의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장쭤린은 루융샹과의 동맹을 구실로 관내로 출병했고 1924년 [[2차 직봉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때 우페이푸 휘하의 [[펑위샹]]이 장쭤린과 결탁하여 [[북경정변]]을 일으켜 대총통 차오쿤을 축출하면서 직예군벌은 패배했고 [[안휘군벌]]의 수장 [[돤치루이]]가 11월 15일 임시집정에 추대, 11월 24일에 취임하면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일본으로 망명했던 루융샹은 북경정변의 소식을 듣고 10월 29일 귀국하였고 장쭤린은 그의 절호 연군 총사령관 직을 회복시켜 주었다. 돤치루이는 1924년 12월 10일 장쭤린의 청에 따라 각성의 순열사 직을 폐지하고 독군을 독판으로 개칭했다. 돤치루이는 안휘군벌의 세력을 다시 확장하고자 루융샹을 직예독판에 임명했는데 이에 장쭤린은 장강유역의 각 성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유로 텐진회의를 소집, 강소성과 안휘성을 직예군벌로부터 빼앗아 다시 안휘군벌이 지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며 병력의 수송과 군비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오로지 의리를 위한 제의이며 사익은 추호도 없다는 장쭤린의 보증에 돤치루이는 장쭤린의 제안에 믿을만한다고 여겼고 돤치루이와 루융샹은 장쭤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 인하여 직예독판은 봉천군벌 [[리징린]]에게 넘어갔고 돤치루이는 왕읍당을 안휘독판에 임명하는 한편 강소독판 치셰위안을 면직시키고 강소성장 한국균에게 독군을 겸직할 것을 지시한 다음에 루융샹을 소환선무사 겸 강소독판으로 임명하여 치셰위안을 토벌하게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