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위왕 (문단 편집) === 《[[죽서기년]]》을 참조한 기록 === 제 위왕 원년(기원전 356년), [[한(전국시대)|한(韓)나라]], [[조(전국시대)|조(趙)나라]], [[위(전국시대)|위(魏)나라]]의 [[삼진]](三晉)이 제 환공이 죽은 틈을 타서 제나라의 영구를 쳤다. 제 위왕은 평륙 땅에서 조나라, 송나라와 회맹했다. 제 위왕 2년(기원전 355년), 추기가 부국 강병책을 논하니 제 위왕은 불필요한 주색가무를 그만두고 인재를 초빙해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그리고 추기를 재상으로 삼았다. 제 위왕 3년(기원전 354년), 제 위왕은 추기(鄒忌)를 성후에 봉했다. 조나라가 위(魏)나라의 속국 위(衛)나라를 쳐서 칠급과 부구를 차지했다. 그러자 위(魏)군이 한단을 포위했다. 제 위왕 4년(기원전 353년), 조나라는 사자를 보내 제나라와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이에 제 위왕이 대신과 상의했는데, 추기는 구원을 반대했다. 그러나 단간붕은 제 위왕에게 군사를 보내 양릉을 쳐서 위나라의 포위를 풀게 했다. 그리하여 제 위왕은 그 건의를 받아들여 병사를 나눠 하나는 위나라의 양릉을 치고, 하나는 전기(田忌)와 손빈이 지휘하여 조나라 군을 직접 구원하라고 했다. 바로 이때 [[손빈]]이 계책을 내어 위나라의 수도 대량을 치게 되었다.[* 위나라를 공격해서 조나라를 구한다. 이것이 바로 [[위위구조]]의 고사이다.] 그리하여 위군이 군사를 회군시켰다. 그래서 10월 제나라 군대와 위나라 군대가 계릉에서 교전해 위군을 [[개발살]]내니 이것이 바로 [[계릉 전투]]다. 제 위왕 6년(기원전 351년), 제 위왕이 즐거움을 탐해 정사를 돌보지 않자 노나라가 제나라를 쳐 양관에 진입했다. 한, 조, 위 삼진이 제나라를 쳤다. 그래서 박릉에 이르렀다. 제 위왕 7년(기원전 350년), 위(衛)나라가 제나라를 쳐 설릉을 점령했다. 제나라는 장성을 보수했다. 제 위왕 9년(기원전 348년), 조나라가 제나라를 쳐서 견성을 점령했다.[* 훗날 [[조조|조조(曹操)]]가 연주의 대부분이 먹혔을 때 남았던 곳 중 하나다.] 그러자 제 위왕은 총희 우희의 간언을 듣고 다시 정사를 돌보았다. 그는 즉묵 대부가 백성들의 원성을 들었으나 사실은 재정을 튼실하게 하는 등의 업적이 있었고, 아 대부는 반대로 백성들의 찬사를 들었으나 재정 상태가 [[영 좋지 않다|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제 위왕은 아 대부를 삶아 죽였다. 그리고 제 위왕은 주나라 천자에게 조회해 사람들은 제 위왕을 현명한 군주로 우러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나라가 이 때는 거의 대놓고 제후들의 개무시를 당했지만 그럼으로써 명분을 얻었기 때문이다.] 제 위왕 11년(기원전 346년), 대부 모신이 제 위왕의 인재 천거가 부당하다고 하니 제 위왕은 그를 죽게 했다. 제 위왕 13년(기원전 344년), 제 위왕은 [[진(통일왕조)|진(秦)나라]]를 방문했다. 제 위왕 16년(기원전 341년), 위나라가 한나라를 포위하자 한나라가 제나라에게 구원을 청했다. 제나라는 그것을 받아들여 제 위왕은 [[전기(전국시대)|전기]]를 주장, 전영, 전분을 부장, 손빈을 군사로 삼아 위나라의 대량을 치게 하니 위군은 수도가 공격을 받아 망할 위기에 처하자 회군했다. 그리하여 한나라의 포위가 풀렸다. 그리고 마릉에서 [[방연]](龐涓)을 해칠 계략을 세웠다.[* 왜 그랬는지는 [[손빈]]과 [[방연]] 문서 참조.] 그리고 마릉 전투에서 방연을 복병으로 죽이고 위군을 박살내 제나라의 위엄을 떨치게 되어 동방의 패자가 되었다. 제 위왕 23년(기원전 334년), 제 위왕은 [[조무령왕]]과 평륙 땅에서 회맹했다. 같은 해 위의 혜왕은 제 위왕과 회맹했고, 그 외에 한나라와 소국들을 데리고 서주에서 회맹했으며, 이때 사람들이 제 위왕을 왕으로 받드니 역사에서 서주에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제나라 군주는 왕이라 불리게 된다.[* 그 전까지는 제의 후작이었다.] 제 위왕 34년(기원전 323년), 진(秦)나라가 제나라를 침입해 상구에서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진나라가 패했다. 제 위왕 36년(기원전 320년), 제 위왕이 죽고 그 아들 전벽강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제선왕|제 선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