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모(삼국지) (문단 편집)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삼국시대)|위나라]]의 제4대 [[황제]]. [[폐제]](廢帝) 또는 고귀향공(高貴鄕公)으로 불린다. 예주 패국 초현 사람. 태조 무황제 [[조조]]의 증손자이자 고조 문황제 [[조비]]의 손자이며, 열조 명황제 [[조예]]의 이복동생 동해정왕 [[조림(삼국지)#s-2|조림]](曹霖)의 아들이다. 즉 조예의 [[조카]]. 형으로는 조계(曹啓)가 있었다. [[조방]]이 폐위된 후 대장군 [[사마사]]의 추천을 받은 조조의 아들 팽성왕 [[조거]](曹據)와 함께 황제 후보에 올랐으나, 역상속[* 일반적으로 선황제보다 [[항렬]]이 높은 사람은 [[상속]]을 꺼린다. 새로 즉위한 황제가 항렬이 높으면 항렬이 낮은 선황제를 향해 절을 해야 되고 [[황태후]] 입장에서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조거는 태조의 아들이므로 조모의 종조 할아버지 뻘이고, 곽태후의 시숙에 해당한다. 조방은 열조 조예의 양자이고 조모는 고조 조비의 손자다. 즉, 항렬은 같지만 조모는 조방의 [[사촌]] 동생 뻘이다. 역사 속의 사례로는 [[후한]] 왕조의 [[질제(후한)|질제]] → [[환제(후한)|환제]] 케이스가 있었다.]을 꺼린 곽태후([[명원황후]] 곽씨)의 뜻으로 황제에 등극하였다. 황제에 자리에 올라서는 당시에 벌써 조위의 전권을 독점한 [[사마사]]-[[사마소]] 형제의 정권에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황권을 되살리려고 노력했으며, 그럼에도 이미 권력은 사마씨의 수중으로 넘어가 마지막 수단으로 본인의 목숨을 건 [[친위 쿠데타]]로 사마씨의 수장인 사마소를 축출시키려다가 사마소의 심복인 [[가충]]의 명령으로 장수 [[성제]]에게 살해당했고 이후에는 [[시호]]도 못 받고 즉위 전 작위인 고귀향공으로써 역사에 기록되었다. 사실상 조위의 마지막 황제로 여겨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