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모(삼국지) (문단 편집) == 여담 == 훗날 [[동진]]의 2대 황제 [[명제(동진)|사마소(司馬紹)]][* 상술된 진 문제 [[사마소]]와 동명이인. 사마소의 이복동생 [[사마주]]의 증손자이므로 진문제의 종증손(從曾孫)이 된다.]가 승상 [[왕도(동진)|왕도]]와 국사를 논하다 '''"사마씨가 어떻게 천하를 얻었소?"'''라고 물었다. 이에 왕도는 [[사마의]]가 [[공손연]]을 토벌할 때 [[학살]]한 이야기, 사마의가 조상을 토벌할 때 남녀노소 모두 멸족한 이야기, 그리고 [[사마소]]가 조모를 죽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에 명제는 "만약 경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서진|진나라]]가 오래가지 못한 게 당연하고 [[동진|이 진나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오."라며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책상에 묻고 탄식했다. 즉, 사마소의 조모 시해는 '''후손조차 부끄럽게 여길 천하의 역적 짓이었다'''는 것이다. 그 후, 동진의 사마씨들은 명제의 그 말대로 유송의 [[무제(유송)|유유]]가 찬탈을 할 때 모조리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남북조시대|남북조]] 이후의 중국 역사에서는 새 왕조가 개창할 때 이전 왕조의 왕족들을 학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는 송 태조 [[태조(송)|조광윤]]의 [[후주]] 황족이었던 시씨 일가 우대로 잠시 끊어지게 되나, 다시 청나라 때까지 계속 이어지게 돠면서 그 악업의 고리가 계속 이어지게 된다. 동 시대에 [[오(삼국시대)|오나라]]의 3대 황제 [[손휴]]는 같은 황족 출신으로 [[손침]], [[손준]]이 자신을 허수아비로 세우고 더욱 더 막장 행각을 펼쳤고 손휴는 [[손량]]을 폐위한 손침과 그 일파들이 두려워 계속 상을 주었으나 속으로는 손침과 그 일파들을 쳐낼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당도해 손침이 역모를 꾀한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12월 8일 손휴는 좌장군 [[장포]], [[정봉]] 등과 모의해 손침을 척살하고 그 일족을 멸했다. 패악질을 해대던 손준과 손침이 황족이라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황실 족보에서 삭제하고 손씨 성을 없애고 고(故)씨로 바꾸고 고준, 고침으로 부르게 했다. [[고려]] [[희종(고려)|희종]]도 비슷한 일을 벌였지만 역시나 실패하고 [[최충헌]]은 희종을 폐위하고 유배만 보냈다.[* 최충헌 자신이 제거한 [[이의민]]이 생전에 폐주 [[의종(고려)|의종]]을 죽여 엄청난 비난을 받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명종(고려)|명종]]과 희종을 폐위만 했을 뿐 죽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최충헌은 희종 폐위 직후 국왕으로 먼저 폐위된 명종의 장남 [[강종(고려)|강종]]을 세웠고 귀양 가 있단 희종을 나중에 [[개경]]으로 불러들여 사돈이 된다. 희종은 나중에 다시 귀양을 가 유배지에서 세상을 뜨지만.] [[고려]] [[우왕]]도 조모와 비슷한 방법으로 권신 [[이성계]]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성계는 사마소와는 다른 방법으로 우왕을 처리했는데 일단 우왕이 자기 집을 습격할 때 집을 비워서 우왕을 허탕치게 한 다음에 우왕을 [[폐위]]부터 한다. 그리고 우왕이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라는 폐가입진을 명분으로 우왕의 아들 [[창왕]]까지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뒤 [[우왕]]·[[창왕]] 부자를 처형했고 [[공양왕]]으로부터 왕좌를 [[찬탈]]하여 [[조선]]을 건국했다. 고려의 모든 군권을 장악하여 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이성계조차도 차마 재위중인 왕을 시해하지는 못하고 일단 폐위한 다음에 죽인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뒤처리 과정은 사마씨보다도 더욱 악랄하고 잔인한데, 사마씨는 그래도 촉한을 멸하고 조위에게서 나라를 빼앗은 다음에는 유씨나 조씨를 학살하는 짓은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예우해줬으나, 전주 이씨는 왕씨로부터 나라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왕씨를 대량학살하여 씨를 말리다시피 했다. 다만, 이는 단순히 이성계의 인성질이 아니라 이성계가 공양왕으로부터 제대로 선양을 받지 못하여 생긴 정통성의 문제였다. 자세한 건 [[왕씨 몰살]] 참조.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이성계는 사마소 이상으로 잔인한 인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성계는 사마소만큼 당시 기득권층의 눈치를 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애시당초 순수 무인 출신이다보니 그런 점에 둔했다는 것도 있었겠지만. 웃기는 건 그런 주제에 [[태종(조선)|자기 아들]]이 정몽주를 죽인 것에는 화를 내고 길길이 뛰었다는 것이다.] 조모의 황후는 [[폐후 변씨]]로 [[무선황후]]의 일족이다. 자식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훗날 [[현종(당)|당현종]] 때 활동한 [[화가]] 조패(曹霸)[* 공교롭게도 [[조조]]의 고향 초현(焦縣) 출신이다.]가 조모의 후손이다. [[당나라]] 때 기록과 [[북송]] 때 기록으로 교차검증되는 사실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거의 비슷하지만 즉위할 때 [[사마사]]에게 절을 했다. 또 일부러 [[사마소]]와 [[가충]]이 조모를 [[도발]]한 것으로 나온다. 세계 역사에서도 [[군주]]나 최고 권력자가 살해당하는 경우는 숱하게 있어왔지만 조모처럼 재위중인 [[군주]]가 대놓고 죽임을 당한 케이스는 손에 꼽을 수준인데 문제는 이렇게 대놓고 백주대낮에 혹은 명분을 충분히 갖추지 않고 군주나 최고 권력자를 죽여버린 사람들의 말로가 아주 비참했다는 것. 조모와 비슷한 시해 케이스로는 자기가 옹립한 [[이세황제]]를 신나게 이용해먹고 자기 부하들을 궁궐로 쳐들어가게 해서 이세황제를 시해한 [[조고]], 자기가 옹립한 [[초의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 부하들을 보내 죽인 서초패왕 [[항적]], [[고려]]의 18대 왕이었던 [[의종(고려)|의종]]을 직접 자기 손으로 허리와 목을 부서뜨려 죽인 [[이의민]][* 의종이 폐주이기는 하나 [[명종(고려)|재위중인 임금]]의 허락도 없이 선대 임금을 죽인 것이라 당대에 고려인들이 이의민을 역적으로 취급했다.], [[일본]] [[센고쿠 시대]]의 효웅이자 천하통일을 앞두고 있던 패자 [[오다 노부나가]]를 혼노지에서 습격해 죽인 [[아케치 미츠히데]][* 물론 오다 노부나가는 왕이나 황제는 아니었지만 위상과 권력은 이미 황제도 뛰어넘은 상태였다.], [[고대 로마]]의 역대급 독재자로서 황제는 아니었으나 사실상 황제보다도 더한 권력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대놓고 패거리를 이끌고 도륙내버린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전한]] 말기의 실권자였으며 자신을 막을 자가 없자 황제를 대놓고 죽여버리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 [[이라크 왕국]]에서 백주에 [[파이살 2세]]를 죽여버린 압둘 카림 카셈 등의 사례가 있다. 이 다섯의 공통점은 말로가 하나같이 당대의 역적으로 손가락질 당하고 최후까지 비참하고 허망했다는 것. 특히 왕망은 자기 자신이 대놓고 백주대로에서 [[군인]]들과 [[백성]]들에게 무참히 토막내지고 혀까지 잘려죽어서 본인 역시 대놓고 살해당한 황제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가충은 저들처럼 제명에 못죽진 않고 천수를 누렸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이 황제를 대놓고 조진 만고의 역적으로 기록될까 죽는 순간까지 걱정하며 조카에게조차 디스를 당했다. 이 시해 사례들에서 하나같이 결말이 안 좋았던 건 최고 권력자가 명백히 살아있음에도 무턱대고 죽인 것도 있지만 그 과정까지의 빌드업 즉 명분을 제대로 만들지도 않은 채로 덮어놓고 죽이는 바람에 본인 자신도 전혀 명분이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여기서 왕망이 대놓고 살해당한 게 제외되는 건 본인 자신이 명분도 없이 왕을 죽이고 역성혁명으로 나라를 만든 것과 집권기에 토탈 패키지 수준의 엄청난 삽질과 최악의 통치로 인해[* 관리들한테 월급조차 주지 않았다.] 스스로 살해당하고도 남을 명분을 만들어버린 탓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