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모(삼국지) (문단 편집) === 평가 === 비록 사마씨에 의해 꼭두각시로 전락하긴 했지만 와중에도 '''[[헌제]]처럼 사마씨와 [[사마소]]에게 저항하고, 나름대로 반격을 시도하거나 아예 목숨을 걸고 직접 [[왕권|황권]]을 되찾기 위해 칼을 빼드는 등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했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학업을 일찍 이루었다거나 [[조식(삼국지)|조식]]과 닮았다는 평을 받았고 박사들과 대화를 하다가 그들이 데꿀멍하게 만드는 등 꽤 능력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에 [[고평릉 사변]]이라는 악재 없이 정상적으로 황위를 물려받았다면 정말 [[위(삼국시대)|위나라]]를 재건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면에선 자신의 조상이 멸망시켰던 '''[[후한]]의 황제 [[헌제]]하고도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나름대로 능력이 있고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올랐으며 언제든 정신줄 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답이 없는 환경에서도 나라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을 꼭두각시로 만든 상대에게 저항하고 황권을 되찾으려고 한 것이 비슷하다.[* 따지고 보면 헌제는 조모에 비하면 훨씬 좋은 조건이기는 했다. 고작 수십 년 역사인 위에 비해 400년 역사를 가진 한의 군주였고, 주변 세력이라곤 없던 조모와 달리 헌제 때는 [[군웅할거]]였다. 헌제가 조모처럼 목숨 걸고 검 빼들고 싸웠다면 한 재건에 성공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헌제는 주변인들은 죄다 죽었어도 본인만은 살아남았지만 조모는 본인까지 죽고 말았다. 중국에선 [[꼭두각시]] 황제가 자기 목숨을 버리고 거사를 일으켰다 죽었다는 점이 인상이 깊어서 '''구차하게 살 바엔 고귀하게 죽음을 택한 영웅'''이라며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사실 그렇다고 조모가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발악을 했다고 하긴 힘들다. 물론 조모가 목숨을 걸 정도의 큰 각오로 일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조모 자신이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 것처럼 조모는 "[[사마소]]가 자신을 죽이면 사마소 자신에게도 (명분 때문에) 큰 손해가 된다."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모의 성격이 급하다는 기록 때문에 다소 성급하게 일을 저질렀다가 실패했다고 평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좀 애매하다. 물론 성공 가능성이 없는데도 다소 무모하게 저지른 것은 맞지만, 사실 조모 입장에선 대책없이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고 기회가 올 가능성도 별로 보이진 않았다. 조모가 뭔가 좀 해보려고 했던 시기에 이미 조위의 친위세력은 개박살이 났으며 황권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고, 앞으로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하든 안 하든 사마씨가 나라를 조금씩 침식해가고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망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였고, 그렇기에 앉아서 기다릴 바에는 스스로의 말처럼 뭐라도 해서 나라를 복원하든 상대방에게 큰 타격이라도 입히겠다는 계산은 매우 옳았다.[* 실제로 이후 사마소는 조모 시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무리수를 두었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촉한멸망전|촉한 정벌]]이다. 이기기는 했지만 엄청난 위험성을 가진 무리수였던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의도에 들어 맞은 셈.] 딱 한 세대만 일찍 태어나서 조방이랑 순서만 바뀌었어도 [[고평릉 사변]] 때나 [[강유]] 침공 때[* 강유가 침공해오자 사마소가 병사들을 모아온 다음 조방에게 보고하러 들어왔는데, 조방은 이 때 사마소를 죽이고 그 군대를 탈취해서 여세를 몰아 사마사도 몰아낸다는 계획을 세웠었지만 막상 사마소가 들어오자 겁이 나서 실행하지 못했다고 하며 그 결과 사마소는 별탈없이 군대를 이끌고 수도로 들어왔고 이 같은 계획을 알게된 사마사에 의해 폐위되었고,고평릉 사변 당시엔 [[환범]]이 [[조상(삼국지)|조상]] 형제에게 허창으로 건너가서 항전하자고 수차례 간언했지만 싹 무시하고 저항없이 항복하여 일족이 멸족당했는데,조방이나 환범의 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있냐는 둘째치고 조모였으면 최소한 실천하기라도 했을 것이다.]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르는데, 참 시기를 잘못 타고 태어난 비운의 황제라고 할 수 있다.[* 조모는 조예가 죽은 후 2년 후에 태어났는데, 조방도 조예의 친자가 아니라 양자였음을 감안하면 조모가 10살만 나이가 많았어도 그 잠재력을 감안해서 황위가 조방을 완전히 생략하고 조모에게 바로 갔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인지 [[영조]]는 헌제와 다르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운 '''조모가 더 뛰어난 황제'''라며 높게 평가했고 조조가 참외를 먹다가 참외를 제대로 안가져왔다며 하인을 함부로 일화가 적힌 [[청성잡기]]에서도 조모는 왕의 자질을 갖췄으나 불운하게도 역도를 만나 억울하게 죽었다며 고평가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