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병옥 (문단 편집) == 여담 == * 야당 노릇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던 시절에 여러모로 반 이승만 세력의 거두와도 같았던 인물이었고 아들인 [[조윤형]]과 [[조순형]]도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하여 민주화 운동에 나섰으며 [[김대중]]과 [[노무현]]의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계 정당 인사라도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미묘하다. 제주 4.3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 [[히스테리]]적인 반공주의를 표방했으며 신익희나 [[조봉암]] 등 정치적 경쟁자들에 대해 교활한 견제(속칭 내부총질)를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유당보다 더 나서서 반공을 열렬히 외쳐대니 자유당 입장에서도 [[빨갱이]]로 몰기 힘들었고 이는 [[사법]] 살인을 당한 조봉암에 비해 자유당에 대한 투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후일 [[신민당(1967년)|신민당]]총재이고 반공주의자이자 [[기독교]]인인 [[김영삼]]이 [[김대중]]에 비해 빨갱이몰이로부터 자유롭게 투쟁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주의자인 조봉암에 비해 평가가 높지 않다. 이는 조병옥이 오히려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에 해당하는 정치인임을 생각해보았을 때 아이러니한 일이다. * 창랑 [[장택상]]과는 친일 경찰 등용 문제에 있어서 서로 협력하는 모양새도 취했지만 [[야인시대]]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친하지는 않았다. 서로 업무적으로 신뢰하면서도 경쟁하는 관계였는데 이는 당시 경무부와 수도경찰청 간의 알력 다툼 때문이었다. 심지어 1948년에는 장택상의 심복이었던 수도경찰청 사찰과장 [[최운하]]를 경무부 수사국이 [[비리]] 혐의로 수사하는 일도 있었다. * 여야로 갈라져 대선에서 경쟁한 사이지만, 이승만과의 사적인 관계는 좀 특이한데, 그의 배우자인 노정면 여사의 부친, 즉 장인인 노병선이 이승만과 배재학당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로 서로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다. 노병선은 초기 감리교 선교 과정에서 평신도로서 (배재학당의 설립자 아펜셀러 목사가 세운) 정동교회 등에서 (아펜셀러 목사의 사망 이후) 거의 목사의 역할을 할 정도로 선교에 열심이었던 인물이었다. 조병옥 자신도 미국 유학전 배재학당의 전문부(대학부)에서 수학하면서 시간강사로 재직하기도 했고 조병옥의 배우자 노정면 여사는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명절이면 세배를 위해 찾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고, 이승만도 노정면 여사를 조카라고 칭하며 환대했다고 한다. * [[김두한]]과 몇 번 접점이 있었지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952_Kim_Dh_and_Cho_By.jpg|#]] 야인시대에처럼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김두한의 발언 및 그것에 기반한 창작물들에서는 조병옥이 마치 김두한의 정치적 후견인이라도 되는듯이 묘사되지만, 조병옥의 회고록에는 김두한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는다.(...)] * '애연가'였다고 하며 밤에 달빛을 보며 [[담배]]를 피는 것이 그의 낙이었다고 한다. 다만 [[기독교]]인이다 보니 '이렇게 담배를 피워도 되는가.'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그는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두고 '기독교의 감화는 나의 인생 항로에 커다란 지침이 되었다'라고 일컫을 정도로 독실한 신앙을 지녔다. 특히 그는 공산주의 세력을 두고 '[[무저갱]]으로 떨어질 [[사탄]]의 세력'이라고 비판했는데 이런 가치관은 그가 제주 4.3 사건에서 강경 진압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연세대학교|연희전문대학]] 강연에서 '사회복음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천국]]을 지상에 임하게 하기 위해 지상 낙원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악(질병, 궁핍, 무식)을 제거해야 한다는 그의 신학적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의 신학을 요약하자면 [[자본주의]]와 친미-친서방인 남한 단독 정부를 이루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질병, 궁핍 등의 악을 제거해나가 지상 낙원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공산주의 세력은 악이라는 것이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이 존경하는 인물이자, [[김영삼]]이 유석 조병옥 박사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