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봉행 (문단 편집) == 생애 == 조봉행은 원래 1980년대에 선박냉동기사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8년 정도 남아메리카의 수리남에 거주하면서 현지 사정에 밝았다. 1994년 5월에 빌라 신축과 관련된 10억원 규모의 사기 혐의로 수배되자 [[대한민국 경찰]]이 수사하기 어렵고 자신이 잘 아는 수리남으로 도피하였다. 그 후 1995년 수리남 국적으로 귀화하고 생선 가공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실상은 어업회사에게 제공되는 면세유를 밀매하는 것이 주 수입원이었다. 또한 조봉행은 중국인 등을 공장에 취업시켜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시키는 사업도 하였다. 하지만 유가 상승, 단속 강화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고 사업에 차질이 생기자 다른 수입원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마약]]이었다. 그는 남미 최대 [[마약 카르텔]]인 '[[칼리 카르텔]]'과 손을 잡고 마약 사업을 펼쳤다. 오랜 수리남 거주 생활 덕분이었는지 사업은 빠르게 번창하였고 수리남 고위 정치인, 관료, 군 관계자와도 두터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심지어 수리남 전 대통령이었던 '데시 바우테르서'(Dési Bouterse)[* 육군 장교 출신 독재자로 1980년대에 사실상 수리남을 통치했고 2010년 7월에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2000년에 마약 밀매 혐의로 헤이그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징역 11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20년에 퇴임했다.]와도 오랜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장교였던 바우테르서의 선박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조봉행의 수리남에서 인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조봉행은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토대로 수리남에 입국하는 아시아계 승객 명단을 미리 받아볼 수 있었다. 그는 현지 한국 교포들을 포섭해 한국으로 보낸 뒤 조봉행을 광물 사업가로 소개하고 조봉행이 건네는 보석(마약)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원 정도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제안으로 한국 국민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사용하였다. 이 운반책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주부, 대학생 등이었고 사정도 모른 채 조봉행의 마약을 운반한 이들은 현지에서 마약 운반 혐의로 체포되거나 구금되기도 하였다. 이 피해자 중 한 명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바로 [[전도연]],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영화)|집으로 가는 길]][* 2022년 후반기 넷플릭스에서 조봉행 체포를 다룬 수리남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프랑스에서 마약운반책의 기소를 맡았던 검사가 마약운반책의 스토리가 수리남보다 더 흥미진진하다는 인터뷰를 해서 시즌 2는 이 스토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이다. 조봉행의 마약 사업은 전 세계로 퍼져갔고 2005년에는 [[인터폴]] 수배명단에 오를 정도였다. 이어 조봉행은 일본과의 마약거래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 한국으로의 마약 공급도 계획하고 있었다. 국정원과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은 이 소식을 접하고 2007년 10월, 조봉행 체포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수리남과 대한민국은 수교를 맺은 관계이지만 현지 대사관이 없고 관련 업무는 베네수엘라 한국 대사관이 겸임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리남 경찰과 군 조직은 조봉행이 매수했기 때문에 쉽사리 협조를 기대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