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 (문단 편집) == 인구 == || 세기 || 국왕 || 인구 || ||14세기||태조||5,500,000 ~ 5,700,000명|| ||<|4>15세기||태종||5,700,000 ~ 6,200,000명|| ||세종||6,200,000 ~ 7,100,000명|| ||세조||7,300,000 ~ 7,900,000명|| ||성종||7,900,000 ~ 9,100,000명|| ||<|3>16세기||연산군||9,100,000 ~ 9,700,000명|| ||중종||9,700,000 ~ 11,700,000명|| ||명종||11,700,000 ~ 12,800,000명|| ||<|5>17세기||선조||11,500,000 ~ 14,100,000명|| ||광해군||11,200,000 ~ 11,500,000명|| ||인조||10,600,000 ~ 11,200,000명|| ||효종||10,900,000 ~ 11,400,000명|| ||현종||11,400,000 ~ 13,200,000명|| ||<|3>18세기||숙종||13,100,000 ~ 16,500,000명|| ||영조||16,800,000 ~ 18,700,000명|| ||정조||18,000,000 ~ 18,400,000명|| ||<|3>19세기||순조||16,200,000 ~ 18,600,000명|| ||헌종||16,500,000 ~ 16,600,000명|| ||철종||16,500,000 ~ 16,900,000명|| ||20세기||고종||16,800,000~ 17,300,000명|| 출처 : 인구 대사전 <표 3-4> 연도별 조선 시대 인구 추정치, 1392년 - 1910년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10222&page=1|#]] >本朝人口之法, 不明錄于籍者, 僅十之一二。 國家每欲正之, 重失民心, 因循至今, 故各道各官人口之數止此, 他道皆然。 >'''본조(本朝)는 인구(人口)의 법이 밝지 못하여, 문적에 적힌 것이 겨우 열의 한둘이 되므로,''' 나라에서 매양 바로잡으려 하나, 너무 인심(人心)을 잃게 되어, 그럭저럭 이제까지 이르렀으므로, 각도 각 고을의 인구수가 이렇게 되었고, 다른 도들도 모두 이렇다. >---- >세종실록지리지 경기 전근대의 인구 자료를 정확하게 통계 낼 수는 없으므로 위 자료는 모두 현대의 추정치다. 왜냐면 조선에선 세금을 피하려고 호구 조사에 일부러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는데 전근대의 중국은 인구가 1억이 넘었는데도 세금을 피하려고 호구 조사를 기피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기에 장부상으로 파악한 인구가 6천만이였다.] 세종 실록 지리지 경기도조에 의하면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조선의 인구수는 실제 인구수의 10분의 1 ~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며 조선 세종 시기의 인구는 최대 800만까지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호구를 통해 계산한 인구수는 그 수치의 8배 ~ 10배 이상을 곱해야 실제 인구수에 가까운 수치가 나온다는 것이다. 역시 송사, 고려도경을 기초로 12세기 고려 인구가 210만 구였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으나 조선 시대 인구수 기록과 마찬가지로 고려 시대의 호구 / 인구 기록의 완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임란 직후와 19세기에는 조선의 행정력이 불안정해서 추측이 더 힘들다. 한 연구에서는 조선의 인구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양반 가문에서 내려오는 족보로 인구 증가율을 추정했는데, 18세기의 연 0.4% 증가율에서 19세기에는 연 0.8% 증가로 계산됐다. 하지만 호구조사상에서는 19세기에 정체하는 것으로 나온다. 결론적으로, 조선이 인구가 계속 증가했는지, 아니면 인구가 정체했는지, 인구가 어떤 추이를 보이는지는 답을 내릴 수가 없다.[[https://www.google.com/amp/s/www.hankyung.com/news/amp/2014051670741%3Futm_source%3Dgoogle%26utm_medium%3Dgoogle_amp%26utm_campaign%3Damp_google|#]] 조선의 인구는 크게 증가한 이전까지 꾸준한 증가 - 임란 직후의 급감 - 임란 이후의 급증 - 19세기의 정체로 표현할 수 있다. 조선 초기의 인구는 수백만 명 수준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것으로 추계가 그려진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농지 재개간, 상업 유통 발달, 새로운 기술의 도입(모내기법 등)으로 18세기에 인구가 1.5배 내외로 급증했다. 그러나 19세기부터는 인구가 정체되기 시작했는데, 당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그렇듯 조선도 인구 폭발로 농지와 식량이 한계가 왔고, 개간할 땅마저 모자랐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삼림은 벌채와 개간으로 축소되어 버리고, 자투리 땅마저 농경지로 이용되었을 정도로 인구 압력이 심했다.[* 나중에 일본 제국이 조선을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을때 조선의 인구 조사를 하면서 일본 정부는 조선이 인구 밀도가 희박하고 미개간지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조선은 이용 가능한 토지 대비 인구 밀도가 상당히 높았고 미개간지는 많지 않았으며 인구 증가율도 높았다. 사실상 일본이 조선을 점령해서 얻을수 있는 메리트는 대륙 침략 교두보를 위한 지정학적 메리트가 대부분으로, 선주민 동화, 자원(물론 [[텅스텐]]같은게 있었지만 문제는 일본의 공업기술력이...) 및 개간 측면에서는 별로였다.] 당대 조선 식자층들 역시 식량 생산량이 소비량에 미치지 못한다며 우려를 나타냈을 정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