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 (문단 편집) == 정치 체제 == [include(틀:조선의 중앙 정치 기구)]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의정부서사제 6조직계제.jpg|width=100%]]}}}|| || {{{#000,#fff 의정부서사제 시기와 6조직계제 시기의 조정 체계.}}} || 조선의 정체(정치 체제)는 국왕 중심제의 '''[[전제군주제]]''' 국가이며 바뀐 적이 없다.[* 사실 [[중국]]이나 [[페르시아]] 같은 [[전제군주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대신들의 견제를 끊임없이 받았기 때문이다. 즉, [[과두정]]적 요소가 존재한다.] 특히 조선의 체제는 1910년 [[대한제국]] 멸망까지 계속되어 왔으나 1905년 [[을사조약]] 이후로 [[한국통감부]]의 간섭과 개입이 있었다.[* [[갑신정변]] 때 정강 14조와 관민공동회 때 [[헌의 6조]]에서 [[입헌군주제]]를 지향한 적이 있긴 하다.] 조선국왕에 대한 경칭은 '''전하(殿下)'''였는데 이는 [[원 간섭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국가(국왕)의 자기 정체성의 설정 방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한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그에 따라 [[원 간섭기]] 당시 [[고려]]에서 성립된 자기 정체성(제후국 체제)의 기본 틀은 그 이후 고려왕조를 이은 조선왕조까지 존속하게 되었고[* 최종석(2017), "13~15세기 천하질서하에서 고려와 조선의 국가 정체성", 《역사비평》 121; (2021), "왜 고려전기의 國制는 황제국 체제로 보일까?", 《歷史學報》 250, p.26; 김윤정(2020), "13~14세기 고려 지식인의 시대 인식과 정체성", 《역사와 현실》 115.], 그 결과 국왕에 대한 경칭은 [[고려]] 후기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전하]](殿下)'''로 불려왔다가, [[청일전쟁]]의 발발과 일본의 경복궁 점령 및 내정개혁 강요의 결과 [[1894년]] [[12월 17일]] [[갑오개혁]]부터는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로 경칭이 격상되었다. 그리고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이후에는 아예 [[칭제건원]]을 함에 따라 '''[[황제]][[폐하]](皇帝陛下)'''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대한황실이 이왕가로 재편되면서 [[일제강점기]]에는 다시 전하(殿下)로 격하되었다. 관료는 수상(首相)격으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이들은 의정부(조선 최고의 의결 기관)에 속한 관원이다.]의 삼[[정승]] 직위가 있으며 [[갑오개혁]] 이후로는 영의정이 [[총리|총리대신]] 등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조선 조정의 정치 조직은 [[국왕]]과 최고 의결 기관인 [[의정부]] 3상, 그리고 각 분야의 일을 담당하는 부서와 같은 기관인 [[육조]] [[판서]]로 구성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