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오해 (문단 편집) === 조선은 가난해서 염색도, 무늬도 없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흰색]]은 곧 [[색]]이다. 즉 인공적인 염색을 해야만 나온다.''' 거기다 흰색은 색깔들 중에서 비싼 고급염료에 속했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조선의 사대부들도 흰 옷을 즐겨 입었고, 고려시대의 임금들도 평상복으로 흰 옷을 즐겨 입었다. [[고려사]]의 1253년 기록에는 '''백은(白銀) 1근을 갖고도 20승(升- 피륙의 날을 세는 단위) 백저포(白紵袍) 1필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비록 이 기록이 특별한 상황을 전한 것이지만, 흰 옷 가운데 값비싼 옷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흰 옷이라고 해서 저렴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난한 천민이나 노비들은 황색, 청색 등 염색한 옷을 입었다.''' 즉, 가난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흰 옷을 즐겨 입은 것이 아니라, 흰 옷을 좋아했기 때문에 입은 것이다. 물론 '목화로 만든 옷은 흰색을 띄는데 무슨 염색이냐?' 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옷감의 흰색과 염색의 흰색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조선 말기의 사진들을 보다보면 같은 흰색인데도 어떤 것은 평범하게 옷고름이나 소매 등 옷의 부분들이 각각 잘 구별되어 보이는데 반해, 어떤것은 조명처럼 하얗게 빛나서 그 형상이 보여지지 않고 마치 사진에서 옷 부분을 도려내고 아무런 무늬가 없는 종이로 때운 것마냥 보이는 사진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유색'''과 '''무색'''의 근본적인 차이다. 일반적으로 생산한 흰색 모직물은 우리가 흔히 흰색을 떠올릴 때의 그 밝고 빛나는 흰색이 아니라 누런색, 상아색([[아이보리]]) 등 다른 색이 얼추 섞여있는 느낌의 탁하고 칙칙한 흰색을 보인다. 여기서 만족하기도 하지만 따로 흰색 염료를 이용하여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깨끗한 흰색으로 만들어 입었다. > '''한국인은 예로부터 백색을 숭상하고 백의를 즐겨 입는 백의호상(白衣好尙) 전통을 이어왔다. 이슬람과 힌두권, 기독교권을 비롯한 세계의 다양한 종교문화권과 다양한 민족에서도 백색을 신성하고 고귀한 색으로 여기는 전통이 있어 왔으나, 한국의 백색선호 사상은 매우 뚜렷하여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백색 선호사상은 고대부터 이어져온 태양숭배 사상과 동양종교의 금채색사상,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주의 사상 등을 바탕으로 하여 흰색을 순수하고 고귀하며 청렴한 색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태어나자마자 흰옷을 입고, 평생 흰 옷을 입다가 죽어서도 흰 옷을 입는다’고 할 정도로 백의를 호상하였으며, 백의의 착용을 제한하는 백의금령(白衣禁令)이 수차례 있어왔음에도 이러한 전통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져왔다. >---- > - 현대 한국 전통복식에 나타난 백색의 저항성에 관한 연구 염색 흰색은 빛깔이 매우 강해서 일반적인 흰색과는 달리, 빛나고 깨끗해서 뚜렷이 구분되어지는 강렬함을 가졌다. 마치 신성한 태양처럼 빛나는 흰색의 성질은 조선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졌는데, 조선에서 "흰색"은 곧 "신성하고 빛나는 자연의 색깔"로 인식되었다.[* 대표적으로 호랑이의 흰 눈썹이 신통한 통찰력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 우리가 새해마다 먹는 흰색의 떡국, 가래떡 등이 있다. 흰색으로 빛나는 신성한 음식을 먹음으로서 새로운 시기의 안녕을 빌던 것이 현재까지 유지되는 것. 결국 흰색이 신성하다는 사상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러한 흰색숭상은 [[부여]] 시절부터 찾아 볼 수 있으며, 외부의 다른 국가와 민족들에서도 종종 보이는 사상이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가 반영되었기에 조선은 흰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기존의 흰색과 혼동하여 이런 오해가 생겨난 것이다. || [[파일:한복염색3.png|width=450]] || [[파일:한복염색4.png|width=450]] || [[파일:한복염색2.png|width=450]] || [[파일:한복염색.png|width=450]] || > '''한국인의 전통 백의는 종교복식과 의례복은 물론 무속복, 제례복, 상복, 평민복, 양반들의 평거복, 학자복 등으로 다양하다.''' 이는 신성함, 비애미, 절제미, 소박미, 인격미, 자연미 등으로 범주화 할 수 있다. >---- > - 현대 한국 전통복식에 나타난 백색의 저항성에 관한 연구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기생이나 광대같은 예술인, 공무원, 군인, 의사, 무당 등등 다양한 곳에서 염색 옷을 입었다. 심지어 부유한 양반들조차 흰색 옷을 자주 입었을 정도였다. 거기다 어린이들의 사진에서는 비교적 싸게 물들인 유색 한복들을 주로 입힌 모습을 쉬이 찾아볼 수가 있다. 한때는 [[황토색]]이 유행하기도 했었으니, 조선은 염색문화가 없어서가 아닌 '''그냥 신분에 상관없이 흰색 옷이 좋아서 자주 입는 거였다.''' > 일명 백민(白民)이라고 약칭하기도 한다. 19세기에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남녀를 막론하고 다 흰옷을 입고 있다는 데 강한 인상을 받았다. > > 오페르트(Oppert,E.J.)는 그의 ≪조선기행 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에서 “옷감 빛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희다.”고 말하고 있으며, 라게리(Laguerie,V.de)도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 > 1895년 전국에 변복령(變服令)과 단발령이 내리자 이에 항의하는 의병전쟁이 일어난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는 백의를 숭상하는 한국인의 집착이 남달리 강했던 증거라 할 수 있다. 그 뒤 일제하인 1920년대에도 백의의 습속은 여전하여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밭 같이 희다고 외국인들은 기록하고 있다. > >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민족이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러한 것으로서 수천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조에서도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고 그 유래의 오래됨을 강조하였다. > > 중략... > > 일제식민주의자들은 한국인이 흰옷을 입는 까닭을 여러 모로 왜곡하였는데, 가령 도리야마(鳥山喜一) 같은 자는 그의 <조선백의고 朝鮮白衣考>란 논문에서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망국의 슬픔 때문에 백의를 입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야나기(柳宗悅) 같은 자도 백의민족의 유래를 “이 민족이 겪은 고통, 많은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백의를 마치 상복(喪服)이라도 되는 듯이 착각하고 있다. > > '''백의를 숭상하는 습속에 대해서는 3세기에 편찬된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 즉 부여의 “재국의상백(在國衣尙白)”이라든지, 변진(弁辰)의 “의복정결(衣服淨潔)”이라든지, 고구려의 “기인결청(其人潔淸)” 따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 > '''이로써 백의는 삼한·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유습임을 알 수 있고,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은 것을 여러 차례 반포된 백의금지령(白衣禁止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 '''즉 13세기 후반 고려 충렬왕 때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태조 7년, 태종 원년, 세종 7년, 연산군 11년과 12년, 인조 26년, 현종 11·12·17년, 숙종 2년과 17년, 그리고 영조 때 여러 차례 거듭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똑같은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 > 이같이 여러 차례 금지령이 내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백의의 습속이 끈질기게 우리의 의생활을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더욱이 갓난아이에게 흰옷을 입히고 죽을 때 또한 흰옷을 입히니 한국인은 요람에서부터 입관에 이르기까지 백의로 일생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 > - [[백의민족]] (白衣民族)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280|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구당서(舊唐書)> ‘고구려조’에는 “왕만이 오채(五彩)로 된 옷을 입을 수 있으며, 백성들은 갈(褐)을 입는다” 하였고, ‘신라조’에는 “의복 등이 고구려·백제와 같고 조복(朝服)은 흰빛을 숭상하고 산신(山神)에 제사하기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고구려의 민중들은 소색인 삼베나 무명옷을 입은 반면, 중국 복식을 받아들인 지배층은 채색옷을 입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흰옷 선호는 바뀌지 않았다. 명나라 사람 동월(董越)은 <조선부(朝鮮賦)>란 책에서 “옷은 흰데 굵은 베옷이 많고, 치마는 펄렁거리는데 주름 또한 성글다.”고 하였다.''' >---- > - 현대 한국 전통복식에 나타난 백색의 저항성에 관한 연구 > 令朝官士人, 着黑色衣, 禁白色衣。 東方之人, 自古尙白, 國典雖有白色之禁, 而因仍成習, 莫之變, 上思以易之, 遂定是制。 > > '''조정의 관리와 사인(士人)으로 하여금 검은 옷을 입게 하고 흰 옷을 입지 못하게 금하였다.''' 동방 사람은 예로부터 흰 것을 숭상하였으므로 국법에 흰색을 금하는 법이 있기는 하나 그대로 습속이 이루어져서 바꾸지 못하였는데, 상이 바꾸고자 하여 이에 제도를 정한 것이다. >---- > - 현종실록 19권 이는 [[백의민족]]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한민족은 고대부터 흰색옷을 숭상하는 풍습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고 그 때문에 고려와 조선시대 내내 백의를 일부러 금지할려고 하였으나 모두 다 실패하였을 정도였다. 물론 아무리 흰색이 신성하다지만 사람의 손이 닿는만큼 쉽게 더러워지는 것 또한 사실이라서, 위아래 모두 염색하는 경우도 많지만 상•하의 중 하나를 유색으로 염색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조건 흰색만을 입는다는 것도 틀린 셈이다. || [[파일:한복염색5.png|width=230]] || [[파일:한복염색6.png|width=240]] || [[파일:한복염색7.png|width=500]] || > 화려한 색의 한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놀라운 점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다. 지금처럼 물감이나 화학재료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인데, 어떻게 저런 다양하고 화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색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무슨 재료를 이용해서, 어떠한 방법으로 천을 염색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그 염색에는 어떠한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일까? > > '''우리 조상들이 물감의 재료로 쓴 것은 주로 식물 염료이다. 그들은 자연에서 채취한 여러 가지 식물의 꽃, 열매, 뿌리, 풀 등에서 염료를 채취해서 옷감을 염색했다.''' 여러 문헌과 전통 염색 전승자에 의하면 색상별로 사용된 식물은 다양하다. '''푸른 물을 들일 때는 쪽풀과 닭의 장풀, 노란 물을 들일 때는 치자나무와 황백나무, 울금, 황연, 신초, 회화나무, 홍화, 빨간 물을 들일 때는 홍화, 꼭두서니, 소방목, 자줏빛 물을 들일 때는 지치의 뿌리를 이용했다.''' > > 식물 염료는 염색이 잘 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에 우리 조상들은 매염제를 사용했다. 매염제는 섬유에 결합이 어려운 염료가 잘 염색되도록 작용하는 재료이다. 조상들은 매염제도 자연으로부터 얻어 사용했는데, 그 종류로는 잿물, 꼬막조가비나 굴껍질로 만든 석회, 명반, 식초 등이 있다. 잿물 중화나 염색 촉진을 위해서는 오미자, 매실 등을 사용했는데, '''특히 오미자는 홍화 염료로 홍색염색을 할 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 -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D%95%9C%EB%B3%B5%EC%97%90-%EC%8A%A4%EB%A9%B0%EB%93%A0-%EA%B3%BC%ED%95%99%EC%A0%81-%EC%95%84%EB%A6%84%EB%8B%A4%EC%9B%80/|한복에 스며든 과학적 아름다움 (천연 염료와 매염제로 다양한 색깔 내)]] > '''우리 전통 오방색중 백색에 가까운 색을 표현하는 천연염료로는 뽕나무 뿌리가 있고 이 색상은 완벽한 하양이기보다는 오간색의 무색(無色), 소색(色)을 보여준다.''' > > 안료는 주로 발색에 사용되는 미세한 물질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채색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흰색안료였다.''' 빛의 표현과 밝고 어두운 차이도 흰색안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것 없이는 묘사할 수 없었다 한다. 천연의 흰색안료는 백토, 고령토(高嶺土, A1203*2SiO2 * 2H2O)와 같이 직접 흙에서 나온 안료와 석고,백악(白, CaCO3), 호분(胡), Oyster shell white,Caca3) 등과 같이 광물에서 나온 것이 대표적이다. '''이 흰색 안료들을 시기별로 다시 분류해보면 선사시대 이후에는 백악, 고령토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그다음으로 연분, 합분이 사용되었는데 합분은 사용된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았다고 한다. 백악과 고령토는 고려 불화에서 흰색 표현에 사용 되었으며, 호분은 조선시대 불화에 주로 사용되었던 흰색 안료다.''' > > ''' '백의민족'인 우리나라는 조선을 예로 들더라도 백자와 횐색의 모시조각보, 일반인의 흰색 누비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백색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백색 사용은 조선시대 훨씬 이전 시대인 삼국 시대부터 애용되었는데 고대 중국 문헌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보면 “한민족이 흰옷을 일상복으로 입었고 <백의민족>이라 불려졌다”고 기술되었다. 또한 “신라인이 백색 옷을 숭상하였다"하고 흰빛을 白이라 하여곧 밝다는 것을 의미하고 흰색을 신성한 색으로 다루었다. 또 선비의 청렴과 결백의 이미지를 흰색으로 투영하여 사용하였다. 한국인은 상복으로 백색 옷을 입어가장 밝은 색으로 죽은 자의 영혼이 좋은 세계에서 영생하기를 바라는 주술적 믿음이 담겨 있었다 >---- > - 흰색의 의미와 적용에 대한 기초 연구 무엇보다 애초에 조선은 전통적인 염색 기술이 발전한 나라였다. 조선시대 조상님들은 주로 식물 염료를 사용하여 간단하게 염색을 하였고 염색이 잘 안되는 경우에는 매염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가령 조선시대 궁궐건축단청에 주로 사용되었던 백색과 흑색계열은 진분(당분, 향분)·정분·진묵·당묵·송연 등이 확인되며 진분은 조선시대 건축단청뿐만 아니라 각종 채화제작에 사용된 백색계열 안료였다. [[http://artminhwa.com/%EC%9E%90%EC%97%B0%EC%9D%84-%ED%92%88%EC%9D%80-%EB%B9%9B%EA%B9%94-%EC%A1%B0%EC%84%A0%EC%8B%9C%EB%8C%80%EC%9D%98-%EC%A0%84%ED%86%B5%EC%95%88%EB%A3%8C%E2%91%A4-%EB%8B%A8%EC%B2%AD%EC%B1%84%EC%83%89/|#]] > “'''지금 위로는 경대부(卿大夫 ; 높은 관직에 있는 벼슬아치)로부터 아래로는 천례(賤隷 ; 천민과 노예)에 이르기까지 자색(紫色)을 입기를 좋아하니, 이로 인하여 자색 한 필 염색하는 값이 또 베 한 필이나 듭니다. 옷의 안찝까지 모두 홍색의 염료를 쓰게 되니, 단목(丹木)과 홍화(紅花)의 값도 또한 헐하지 않게 됩니다. 다만 사치를 서로 숭상하여 등차(等次)의 분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물가가 뛰어 오르게 되니 또한 염려가 됩니다.''' 지금부터는 그 자색의 염료는 진상하는 의대(衣襨 ; 임금의 옷)와 대궐 안에서 소용되는 외에는 일체 엄격히 금하고, 홍색으로 물들인 옷의 안찝은 문무의 각 품관과 사대부의 자제 외에 각 관사의 이전(吏典)·외방(外方)의 향리(鄕吏)·공상(工商)·천례들은 또한 입는 것을 금하게 하고, 연월(年月)로써 기한하여 사치를 영구히 금단시키고 등차(等差)를 분변할 것입니다.” >---- > - 1427년(세종 9) 2월 19일자 ‘세종실록’ 실제로 세종시절 기록을 보면 높은 관직에 있는 벼슬아치와 천민들도 자색 옷을 입기를 좋아하니 물가 안정을 위해 자색 옷을 금해 달라고 말한 기록이 남을만큼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색상의 옷을 신분에 상관없이 자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은 무늬 문화가 없다는 말도 허구이다. 백 번 양보해서 조선이 타국에 비해 무늬의 사용빈도가 떨어졌다고 할 수는 있더라도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더욱이 조선이 선호하는 무늬 방식도 있었다. 기존의 원단 색에서 약간 채도를 높이거나 그와 엇비슷한 색을 이용하여 최대한 튀지 않도록 무늬를 새기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무늬문화는 있었지만 평민들은 굳이 돈 들여서 새겨 넣을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더러, 무늬는 기생들이나 한다는 인식이 있기도 해서 그리 즐기지 않았을 뿐이다. 더욱이 흰색은 과거부터 비싸고 고급진 색상에 속했다. 요즘이야 여기저기서 흰색을 볼 수 있고, 공장에서 흰 옷이 대량으로 찍혀나오지만, 과거 염료제조기술과 표백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꽤나 대접받는 색깔이었다. 특히 서양에서 흰색의 드레스는 "부를 상징하는 고급의복"이었다.[* 지금도 서구권 왕족들의 드레스나 공무수행용 복장은 거의 다 흰색이다.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복장도 흰색인 게 많고, 그 며느리인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도 그렇고 살아생전에 입었던 옷에 하얀색인 게 많았다. 심지어 흰색이 [[교황]]의 옷 색깔로 사용된 탓에, [[유럽]] [[귀족]]들 중에서 [[바티칸]] 측의 허가를 받은 일부 유서깊은 가문에게만 교황을 알현할 때 흰색 옷을 입는 것이 허용되기도 했다.] 이는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종종 실록과 같은 기록에서는 '''"흰색이 사치이니 금해야 한다."''' 라는 내용들이 적혀있다. 이를 보고서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설명했듯이 흰색은 사치스러운 색이 맞았다. 재료, 제작에서 더 높은 난이도를 필요로 했고, 더욱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기존의 칙칙한 흰색으로 보여지기에 관리도 힘들고 수명도 짧았다. 그렇기에 흰색은 비싸게 불렸고 사람들은 아예 염색을 하지 않고 목화의 자연적인 흰색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현재도 흰색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거나 관리하기 위해선 세탁시 별도의 표백제를 사용하거나, 삶거나, 이염을 막기 위해 다른 색깔의 옷과 같이 세탁하지 않는 등 신경 쓸 것이 꽤나 많은데 지금보다 염색기술도 표백기술도 부족했을 조선시대에는 흰색 옷의 제조, 관리 난이도가 어땠을지는 불보듯 뻔하지 않은가? 괜히 신분도 높고 돈도 많던 [[양반]]들이 흰색을 자주 입은 게 아니다. >• [[태종(조선)|태종]]1년- 백색의복을 입는것을 금한다. >• [[연산군]] 11년- 여인들이 머리수건과 치마를 희게 물들이는 것을 금한다. >• [[현종(조선)|현종]]12년- 조정에서 관리들이 흰옷을 입는것을 금한다. >---- >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는 조선 조정의 흰색 염색 금지령 조정에서도 이러한 사실들을 알았기에 다양한 색깔들로 염색하기를 장려하였다. 흰색을 아예 법적으로 금지하거나, 염색만 해도 사례를 내리던가, 온 국민의 옷을 파란색으로 염색하려고 시도하는 등 흰색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시도들을 해 보았다.[* [[구한말]] 개화 계몽 운동가들이 의생활의 개혁을 위해 주장한 것 중의 하나도 '흰 옷이 아닌 색깔있는 옷을 입자'라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이런 흰 옷이 사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비실용적이고 구태인 복식이라고 보았던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