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오해 (문단 편집) === 여성은 배우지 못한다? ===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어느정도 사실이지만 그 내용을 확대·왜곡시킨 경향이 있다. 여기서 배움이란 "학교에서 배우는 전문교육"을 의미한다. [[사대부]]들의 주장을 보면 여성은 교육을 받아선 안 된다는 말들이 여럿 보이지만, 이는 조선에서 사대부 남성만이 전문교육을 배우고 관직에 나가던 사회적 구조가 원인이었다. 그렇기에 사대부 여성은 배움의 까닭이 딱히 없었으므로 굳이 전문교육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이는 동서양을 통틀어 귀족의 개념이 있는 나라라면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빡세게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여성의 경우 배우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니 굳이 하지 않았다에 더 가깝다는 것. 반면에 [[평민]]들은 남녀가 기초적인 초등교육(소학, 간단한 한문)을 받을 뿐, 과거에 나갈 것이 아니라면 고등교육(성리학, 경전)을 배울 기회, 명분, 경제력이 전무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이 실질적인 기술들을 배워서 먹고 살았다. 동시에 조선에서 세워진 초창기 학교들은 대다수가 서양인들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가면 갈수록 서구 열강에 의한 사건들이 여럿 발생하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었고 이와 관련해 서양인이 세운 학교가 엮이면서, 사대부들 사이에선 반발심으로 학교 교육에 대한 반대를 외치기도 했다. 당시 여성도 [[한글]]은 배웠다. 사대부 남자들은 한문을 사용했지만 여성들은 주로 언문을 사용했다. 증거로 당시 여성이 쓴 언문 편지나 문학 작품들이 확인된다. 또한 한글 소설의 주 소비층이 여성이었단 것을 생각하면 여성들도 일단 한문은 아니더라도 문자를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장 [[김만중]]이 [[구운몽]]을 쓴 이유가 '어머니가 적적해 하실까봐'였다. 또한, 원한다면 [[상업]], [[공업]], [[예체능]]처럼 다양한 분야를 배울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상업에 능통했던 [[김만덕]], 사당패의 바우덕이 같은 인물들이 있다. 19세기 땐 [[신재효]]에게 여성들이 판소리를 배우기도 했었고, 풍속화를 보면 남성과 함께 돗자리, 망건 등을 만들며 수공업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더러 보인다. 그러면 고위층의 여성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조선 후기에는 여성의 교육이 증가하면서 남편을 가르치는 여성인 현처가 등장했으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4492|임윤지당]], 강정일당처럼 성리학을 자기화하는 여성 성리학자들이 나타났다.[* [[http://blog.naver.com/lord2345/220375064721|링크]] 참조.] 이들은 남성 양반들에게도 자신들과 대등한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대접받았다. 참고로 임윤지당은 남자와 여자의 존재를 차별에 두지 않고 음양오행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한 사람이며, 역사 인물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도 유명했는데, 그 논리가 탄탄하여 모두들 수긍했다고 한다. 즉 여성의 말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폄하하지는 않았다.[* 고려 때와 비교해서 그 권리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왕족의 경우에도 [[인수대비]], [[문정왕후]], [[명성황후]]는 한문을 알던 걸 넘어서 유교 경전에도 나름 통달했다. 게다가 인수대비는 여성 전용 유교 교과서 격인 <내훈>의 저자이기까지 하다.[* 심지어 [[인수대비]]는 [[조선시대]] 인물로는 보기 드물게도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하기도 했다.] 더욱이 일반적으로는 성리학 교조화에 한몫 했다고 하는 그 [[송시열]]부터가 여성의 교육을 강조하며 자기 집안의 며느리나 딸 등에게 '계녀서'를 손수 적어주기도 했으니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보아,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는 교육 면에서 떨어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못 배웠다고는 할 수 없다. 조선과 동시기에 다른 지역이라고 해도 딱히 여성에게 전문교육을 찬성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각 국가마다 저마다 이유는 달랐겠지만 비단 조선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장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저자 요한나 슈피리는 자신이 여성임에도 여성의 대학 교육에 반대했는데, 19세기 후반임에도 여전히 여성 교육에 대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어땠는지 잘 드러나는 일화라 할 수 있다. 결국 이같은 현상은 "여성이 교육받는 것이 싫어서"라기보다는 "기존 체계의 붕괴에 대한 지도층들의 반발" 그리고 "서구열강에 대한 견제"에 가까웠다. 심지어 그 서구열강도 여성의 교육에 대해 100% 긍정적인 건 아니어서, 괜히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최초의 근대적 [[페미니즘]] 운동인 [[서프러제트]] 운동이 일어난 것이 아니며[* 장애를 극복한 인물로 유명한 [[헬렌 켈러]]도 이 운동의 지지자였을 정도로, 사회 각계각층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동 시대의 [[캐나다]] 소설인 [[빨간 머리 앤]]에서 주인공 앤을 친부모처럼 양육했던 커스버트 남매가 앤의 미래를 위해 평생 지지해오던 [[보수당(캐나다)|보수당]] 대신, 여성 교육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자유당(캐나다)|자유당]]을 지지하기로 바꿨다는 묘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