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오해 (문단 편집) ==== 과부여성은 자결하는게 옳다? ==== 열녀비와 같이 조선은 유교사상에 따라 과부가 자신의 수절을 지키고자 자결하는 것을 이상적이고 높게 평가했다. 실재로 한 남자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행위는 지구적으로도 과거부터 현대에서도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서 환영했다. 유교의 발상지였던 중국에서는 [[명나라]]시절 마을사람들 앞에서 과부가 목을 매어 자결하면 사람들이 단체로 칭찬과 미담으로 명예롭게 받들었다. [[인도]]의 경우에도 [[사티]]라는 행위를 통해 과부의 수절을 강요하기도 했다.[* 현대에도 발생하는 사티의 경우, 종교적 행위로서 벌어지는 사티로 인한 종교계의 지원금 등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니 여인의 정절에 대한 숭고한 관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금전적인 이유탓이라는거다.] 물론 이러한 행위들은 [[마녀사냥]]처럼 주 목적은 피해자의 재산에 있었다. 허나 당연하겠지만 조선은 유교사상에 근거하여 수절을 이상적으로 보고 상을 내린 거지, 국가적으로 강요하거나 옳다고 확정한 적이 없다.[* 조선 후기의 전쟁 이전에 재가금지령을 내리긴 했지만 이 역시 재혼으로 인한 자녀의 정계를 막는다는 등의 패널티를 보자면 민간의 재가금지를 명한 것이 아닌, 양반들의 수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주장하기도 한다.] 뭐 자결을 부추겼다고는 할 수 있어도 여성의 의지가 아닌 강요나 범죄와 연관되었을 경우 열녀를 취소하고 관련자를 벌하는 기초적인 융통성은 있었다. 일례로, [[영조]]의 서차녀였던[* 언니였던 [[화억옹주]]가 어릴 적에 사망하여 실질적으로는 장녀였지만, 일단 순서 상으로는 명백히 차녀였다.] [[화순옹주]]는 남편이 죽자 곡기를 끊어 자살했는데, 딸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했던 영조가 금식을 중단하라고 간곡히 권유했음에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열녀]]로 인정하여 정려문을 내리자는 신하들의 제안에 '''"아비의 말을 따르지 않았으니 불효요, 임금의 명을 거역했으니 불충이다."'''며 거부하여 정려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영조 사후에 옹주의 조카인 [[정조(조선)|정조]]에 의해 정려되었다. 그나마도 화순옹주의 자살은 [[유교]]적인 논리에 따른 게 아니라, 어린 시절에 어머니 [[정빈 이씨]]와 자신의 동복형제들을 모두 잃고 아버지와 중전인 [[정성왕후]]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서 가족의 정을 많이 느끼지 못하였는데, 그런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의지할 유일한 대상인 남편이 사망하자 삶의 의지를 잃은 탓이라고 보여진다. 그런 만큼, 적어도 국가적 차원에서는 과부의 수절이 마냥 강요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만 기록에 남은 것처럼 열녀문이 세워진 지역과 가문에는 특혜가 내림에 따라 특혜를 노리고 남편을 잃은 여인을 살해하는 일은 있었다. 이 경우는 현대에도 발생하는 '배우자의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당연히 권장되는 사안은 아니며, 들킬 경우 관련자들 역시 엄중히 처벌되었다.] 이에 관련해서 [[은장도]]에 대한 오해도 첨가되어있는데, 은장도가 여성이 수절을 위해 쓰는 자결용 칼로 왜곡되어 전해진 것이다. 실제로는 [[신라]] 시대부터 여성들 사이에서 애용된 장식용 맥가이버칼로[* [[고려]] 시대에 [[원나라]]를 통해 유입된 외래 문화라는 설도 있지만, 이는 [[일제 강점기]] 시기에 [[최남선]]이 왜곡한 내용이다.], 위험하거나 뭔가를 자르고 다듬을 때 칼을 뽑아 쓸 수 있고, 칼집의 장식용 보석은 갈아서 상처약으로 써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수절을 위한 자결용으로 안 쓰인 건 아닌데, 이건 외적의 침입이나 도적들의 습격으로 인해 도망갈 수조차 없을 때, [[강간]] 등의 모욕을 피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나 그렇게 쓴 것이다[* 이 사실이 서구권에 알려지면서 '동양 여자들은 성범죄 피해를 당하면 무조건 자살을 해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든다'는 편견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지금 언급하는 [[조선]]만 해도 성범죄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멀쩡히 살아서 가해자를 고소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린치를 가해서 단죄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서구권에서의 이러한 오해는 [[이소룡]] 주연의 영화인 [[용쟁호투]]의 묘사 때문에 벌어진 건데, 정작 그 영화에서도 이소룡의 여동생 역을 맡은 안젤라 마오 잉이 자신을 겁탈하려는 건달들에 맞서서 여러 합을 붙어 분투하면서 도망가다가, 막다른 길에 이르러 갈 곳이 없자 궁여지책으로 옆에 있던 유리 조각을 집어서 자살한 것으로 나오므로, 흔한 편견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스인]] 남성들은 전통 복장인 푸스타넬라를 입을 때 장식용으로 단검을 차고 다니는데[* 이것도 전투용이나 자결용이 아니라, 순전히 패션용일 뿐이다.], 조선의 여성들이 들고 다닌 [[은장도]] 또한 그런 용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남아있는 은장도 유물들도 대부분 비싼 거라서, 서민 여성들은 노리개나 복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사실, 치안이 극도로 열악했던 전근대에는 호신용과 장식용을 겸하는 칼을 차고 다니는 풍습이 매우 흔했으므로, 어느 나라의 어느 민족이건간에 여성들이 이런 다용도 칼을 많이 갖고 다녔다. 가령, [[일본]]의 [[아이누|아이누족]] 여성들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 작은 칼인 [[마키리]][* 정확하게 말하면, 여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칼은 [[마키리|메노코마키리]]라고 따로 불렀고, [[은장도]]같은 장식용 칼은 에무시(emus)라고 했다.]를 소지하고 다녔고, 이것이 연인들끼리 선물하는 물건으로도 쓰일만큼,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간주되었다. [[중세]]에서 [[근대]]시대의 [[유럽]]에서도 [[귀족]] 여성들은 호신용으로 단검이나 [[권총]]을 소지하고 다녔는데, 이 역시도 수절하려고 자살하는 용은 당연히 아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2001년 영화인 [[멕시칸]]에서는 한 [[귀족]] 남성과 결혼하려던 [[멕시코인]] 여성이 결혼식에서 예식용으로 쓰려고 가지고 온 장식용 [[권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건 남편인 귀족이 자기 애인을 그 총으로 쏴 죽인 것에 빡쳐서 그런 것뿐이고, 그 이후로는 실전용이 아닌 [[갱스터]]들이 탐내서 서로 가지려고 투닥거리는 [[골동품]]으로만 나온다.][* 애초에 [[유럽]]은 [[유교]] 문화권도 아니어서 여성에게 수절을 강요하는 문화가 아예 없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용병]] 출신 [[귀족]] 가문인 [[스포르차 가문]] 소속의 여귀족인 [[카테리나 스포르차]]는 자신의 [[성(건축)|성]]을 포위한 정적들에게 자녀들이 체포되어 협박을 당했을 때, 자신의 [[생식기]]를 보여주면서 '''"그런 아이들은 (재혼을 해서라도)얼마든지 더 낳을 수 있다!"'''라고 외치는 패기를 보여주어서 오히려 자녀들을 무사히 구출한 일화가 있었다. 이는 전근대 시대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 이혼과 재혼이 빈번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