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오해 (문단 편집) === 남자는 게으름뱅이? 여자는 노예? === 외국인들의 견문록을 보면 남자들이 일은 안하고 게으르게 살아서 여성들만 고생하여 노예와 같다는 말들이 있는데, 이는 당시 조선의 생활 패턴을 잘 몰라서 생긴 말들이다. 당시 조선인들의 기상시간은 보통 4~5시 정도로 9~10시까지 하루의 대다수 업무를 끝내곤 [[시에스타|휴식을 취했다.]] 일반 서양인들이 활동할 시간쯤에는 농사일에 지친 남자들이 뻗어 있고 식사준비와 빨래를 하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직후에 쓰인 [[박인로]]의 가사인 [[누항사]]를 보면, 새벽 2시쯤 곡식을 빌리려고 민가를 찾아갔더니, 그집 주인장이 하는 말이 "이른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요?"였다. 이미 예로부터 이러한 시간관념이 있던 것.] 남녀가 함께 일하는 것이 보편적이던 평민 사회에서 어느 하나만 속 편히 살았다면 [[이혼|바로 섶이 잘렸을 것이다.]] 보통 조선인들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땅만 있는 농사꾼이면 몰라도, 또 다른 직업이 있는 경우엔 낮에 기본적인 농사를 짓고, [[투잡|오후엔 제2의 직업을 가지고 다른 일들을 하며 먹고 살았다]].[* 이는 당시 [[군인]]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일단 농사를 지은 후에 본업을 하러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는 한반도 기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데, 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농번기는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을 받아 높은 기온과 습도를 가지게 된다. 농업이 중심인 국가에서 대낮에 일하는 건 매우 고된 일이며 [[일사병|자칫하면 목숨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가급적 해가 완전히 뜨기 전후부터 일을 했던 것.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터널(비닐하우스) 시설은 실외 온도와 실내 온도가 최대 20도씨까지 차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낮에 일을 하는 것은 진짜 목숨이 걸리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군대]]에서 폭염주의보를 내려서 일과시간임에도 작업을 쉬게 하는 게 이 때문. 실제로 경험이 적은 신임 [[소대장]]이 대대에서 작업해 놓으래서 그거 일찍 끝내겠다고 병사들 데려갔다가 뙤양볕에서 몇 시간씩 일하던 일, 이병들이 더위에 지쳐서 뻗어버리는 사례들이 간간히 나오기도 한다. 아무리 더운 날씨에 익숙한 [[동남아시아]] 사람과 [[아프리카]] 사람이라도 한여름에 뙤약볕에 들어가 일하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가 [[에어컨]]을 보고 괜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칭송한 게 아니다. 그리고 온도가 지나치게 높을 때는 농약이나 비료, 퇴비마저도 약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지므로, 한여름에는 비교적 선선한 새벽에 살포를 하고 한낮에 쉰 뒤 온도가 차츰 낮아지는 저녁 때쯤 다시 살포해서 오후 10시나 다음날 새벽에 일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 시간대에 도시민들이 시골에 갈 일이 없으니 알지 못하고 당시의 서양 사람들과 같은 선입견을 가진다. 당장 [[유럽]]도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여름이 무척이나 무더운 [[남유럽]]에는[* [[이원복]]의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에 의하면, [[코냑]]의 생산지인 [[프랑스]]의 그랑 샹파니아 지방에서는 여름에 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남유럽]]이 질 좋은 [[와인]]의 산지로 유명하다.] [[시에스타]]라 하여 오후 2시 경에서 4시 경까지 모든 직장들이 일정하게 휴식을 취하는 풍습이 있는데, [[산업 혁명]] 이후로 [[영국]]이나 [[독일]] 등의 [[북유럽]] 국가에서 남유럽인들을 멸시하는 근거로 악용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우위에 있는 나라들이 그렇지 못한 나라들을 게으르다고 멸시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하다[* 현대 [[대한민국]]이나 [[일본]]에서도 같은 이유로 [[남유럽|남유럽인]]이나 [[동남아시아|동남아시아인]], [[미국 흑인]]들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어서, 이것이 1992년의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파일:식민지 놀이.png|width=600]] [[https://www.youtube.com/watch?v=kcU10bE4V24|역사채널e-조선을 가지고 놀다.]] 당시에 서양이 이미 [[산업혁명]]으로 산업화 사회에 들어간 것과 달리, 당시 조선은 아직 농업 사회였다. 사회적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서양인들의 잘못된 시선 탓에 이러한 오해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이런 오해들을 가지고 위의 사진과 같은 보드게임을 만들어 [[식민사관]]에까지 이용해 먹었다. 웃기게도 일본도 대도시가 아닌 이상, 지역마다 농업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농어촌 지역에서는 날씨가 무더운 날이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는 일이 잦았다[* [[일본]]이 창작물에서의 묘사대로 [[시골]]까지 도시 못지않은 수준으로 인프라가 갖춰진 것은 빨라도 1970년대의 일이고, 늦게는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1980년대의 거품경제]] 시기부터의 일이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한국에도 새마을 운동으로 인프라가 다 깔린 이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이상으로 산지가 많아서 인프라 확충에 어려움을 겪는 [[오지]]가 많다. 그 때문에, '''21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 애니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는 주인공인 [[케로로]] 중사가 우연히 [[일본]]의 오지 마을에 떨어진 뒤에, 원래 얹혀살았던 [[히나타 가]]의 집이 있는 [[도쿄도|도쿄]]로 되돌아가려고 버스 배차표를 보다가 버스노선이 이미 70년대에 단선됐음을 알고 [[멘붕]]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 외에 21세기의 시골이 배경인 [[논논비요리]]에서는 80년대 장난감을 동네 가게에서 2000년대까지 팔고 있다든가 집인데 그냥은 휴대전화가 안 터져서 팔을 높이 쳐들어야 한다거나 같은 이야기도 나온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