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오해 (문단 편집) === 조선은 반일 국가였으며 그것 때문에 망했다? === 현재 한일 관계가 격화되자 나오는 주장으로 조선이 일본을 계속해서 배척해 무능해졌고 이것이 멸망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조선시대의 유교와 소중화 사상이 한국 반일감정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조선은 반일을 기조로 삼은 적이 없으며, 일본과의 교류도 적지 않았다. 특히 조선-[[에도 막부]] 관계는 백제-왜 이래로 비교적 평화롭고 사이좋던 시절이었다. [[통신사]] 파견도 한 예. 그 이전 세종대왕도 일본의 일부 문화나 기술이 조선보다 낫다며 배우자는 의견을 피력하거나 왜관을 설치해서 일본인들에게 유화 정책을 실시하는 등의 우호적이었던 기록들이 많다. 오히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반일보다는 반중, 정확히는 반여진/청 감정이 강했다. 일본 쪽의 해적들도 경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육지를 맞댄 여진 및 몽골계 마적들을 더 위험시한 것이다. 소중화사상도 일본보다는 청나라를 타깃으로 한 부분이 크다.[* 사실 중국의 중화사상을 수용하여 자국을 높이고 외부 세력을 오랑캐라 비하하는 것은 조선,일본,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나타난 보편적인 형상이다. 조선만 그랬던게 아니다.]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로 수교할 때도 일본측의 형식적 사죄를 받아들이고 무례나 속임수를 알고도 넘어가는 등, 도리어 현재의 한국이나 북한보다도 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현재에도 일부 진영에서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문제를 극복하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것처럼[[https://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21822&board=kor_workingpaper&keyword_option=&keyword=&more=|#]] 조선 또한 병자호란 등 청나라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임진왜란으로 인해 험악해진 국제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존재했다.][* 다만 이 때문에 오히려 일본에서는 일본이 임진왜란의 승전국이라 조선이 일본에게 숙이고 들어갔다는 혐한적인 관념이 퍼지게 되었다.] 게다가 개화기 때는 일본에 사절단을 보내 근대 문물을 배우려고 했다. 이외에도, 러시아 견제를 위해 중국 미국에 이어 일본과도 친선관계를 맺자는 조선책략이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청일전쟁]] 무렵, 조선에 들어온 일본군이 조선을 상대로 벌인 어마어마한 징발(약탈) 때문에 조선의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았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반일감정이 안 생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174421119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