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그리스도교련맹 (문단 편집) ==== [[종북주의자]] 최재영 목사 ==== [[재미교포]]이자 종북주의자인 최재영 목사는 자신의 책과 기고문 등에서 북한 정부 및 조그련 측 주장을 대부분 그대로 반복하면서, 이북 지역 예배당들이 전부 한국전쟁 기간 폭격 등 포화를 입어 파괴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일성 관련 기념물로 남아있는 포평읍교회·은율읍교회나 원산문화회관으로 용도변경된 원산 [[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8068|광석동교회]] 등의 예를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님이 분명하다. 북한교회연구원 유관지 원장도 수집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함주군]], [[청진시]] 등에 용도 변경된 예배당이 있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유관지 원장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구성원들은 개신교적 배경을 갖고 있다 생각하는 연구자이다.] 그러나 최재영 목사는 '조그련 칠판에 어디어디에 가정 처소가 있다고 적혀있는데 실제 가보니 진짜 있더라' 수준의 소리만 하면서 이미 탈북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이 부정한 독자 주장만 고집하는 인사이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절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면서 목사는 커녕 최씨가 과연 기독교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북한을 옹호하고, 북한 교회 신도가 왜 적느냐는 지적에는 '북한의 교회는 가정이 중심(?)'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권이나 종교 탄압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니 이해해주자는 식의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설령 최재영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해방 이전에 40만 명이던 교인은 북한 공식 집계 1만 2천명으로 줄어들었으며, 교회는 한국에서 돈을 거의 다 지원해줘서 지은 3개, 그것도 평양에만 존재한다. 나머지 북한의 개신교 신자들은 북한의 국가무신론 정책에 신앙을 버렸다. 실제론 1950년대에 전부 처형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북한|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리고 북한의 교회를 비롯한 종교 시설과 자산은 1945년 말부터 박해가 시작되어 1946년까지 전부 몰수당하고, 한국전쟁 이전까지 처형과 탄압으로 거의 해체 상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