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그리스도교련맹 (문단 편집) === 평양신학원 === [[파일:external/www.tongilnews.com/117017_51107_2756.jpg|width=400]] 평양신학원 전경 [[파일:external/www.kmctimes.com/20229-2-3629.jpg|width=400]] 평양신학원 강의실 평양신학원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소속 신학교이다. 북한 [[개신교]] 유일의 성직자 양성 기관으로 1950년 7월 폐교된 조선기독교도련맹 소속 평양신학교를 계승하여 1972년 9월에 개원했다. 평양신학원은 1971년 5월 조선기독교도련맹 중앙위원회 회의의 결정에 의거하여 개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개원 후 1999년까지 운영하다가 2000년까지 1년여 동안 운영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러다 2000년부터 운영을 재개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평양신학원 위치는 처음에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청사에 있었고 다음에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청사 3층에 있었다가 2003년에 한국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지원을 받아 건축한 건물로 입주했다. [[파일:pyongyangtheologicalinstitute19901023(1).jpg|width=600]] [[파일:pyongyangtheologicalinstitute19901023(2).jpg|width=600]] 1990년 평양신학원 강의실 모습. 사진 맨 좌측 인물은 당시 조그련 서기장 고기준 목사. 평양신학원은 1972년 9월 개원 당시 학제로 3학년 6학기제를 채택했다가 2000년 9월부터는 5학년 10학기제를 채택했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신학교와 달리 [[학사]]·[[석사]] 과정이 통합된 신학교육기관이다. 개원 시 초대 원장은 강량욱 목사였으며 교수로는 고학진, 김득룡[* [[감리교신학대학교|감리교신학교]] 졸업.], 임현달, 이영태 목사 등 전쟁 전 평양신학교와 [[감리교신학대학교|감리교신학교]] 출신 목사들이 맡았다. 평양신학원 원장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이 당연직으로 겸직하기에 현재 원장은 강명철 목사이며 [[교수]]로는 오경우, 정경숙 목사 등이 있다. 신학교재는 처음에 [[한국전쟁]] 전 출판된 [[신학]]도서를 사용하다가 지금은 한국과 해외에서 지원받은 신학도서와 북한 목사들이 쓴 신학 도서를 사용한다. 특히 한국 [[공동번역성서]]를 북한 문화어에 맞춰 교정[*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공동번역 성서를 문화어에 맞게 개정하여 출판했다.]한 [[장로교]] 출신의 이영태 목사는 《조선교회사》, 《세계교회사》, 《조직신학》, 《조선기독교도련맹 약사》 등 여러 신학 서적도 저술했다고 한다. 평양신학원은 개원 시부터 지금까지 매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기수]]가 졸업하면 다음 기수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신[[학생]] 선발을 한다. 재학생 숫자는 1기부터 현재 14기까지 9~12명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입학은 입학 희망 교인이 소속된 교회나 가정예배 처소의 추천을 받고 직할시·도그리스도교련맹의 허락을 받아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입학 자격 중 학력은 [[고등중학교]] [[졸업]]이면 되지만 거의 모든 재학생은 대졸 이상 학력을 갖고 있다. 또한 거의 모든 재학생은 중·[[장년]] 연령대의 사람이다.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며 평양신학원은 여성 입학을 허용한다. 신학생 중에 여성도 있다. 평양신학원에서는 구약성서, 신약성서, 조직신학, 실천신학, 조선교회사, 세계교회사, 찬송가학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종교 외의 인문·사회학 과목들도 개설하여 가르치는데 평양신학원 교수들이 아닌 북한 내 다른 대학교 교수들을 초빙하여 가르치게 한다. 1990년에서 2001년 소천할 때까지 재미교포 홍동근 목사[* [[향린교회]] 전(前) 담임목사 홍근수 목사의 형.]가 매년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신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에서 성서강해·조직신학·기독교개론 등 [[개신교]] 관련 강의를 했다. 홍동근 [[목사]]는 2001년 11월 11일 강의를 위한 북한 방문 중 지병인 고혈압으로 소천하여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2003년에서 2008년까지 [[기독교대한감리회]]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측 목사들이 정기적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계절학기 강의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평양신학원 운영 지원은 이명박 정부 기간에 중단되었다. 현재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자체 능력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평양신학원의 시설은 교무실·교수실·강의실·휴게실·교육관·[[도서관]] 등 소규모 신학원으로서 큰 부족함 없이 갖추어져 있다. [[강의]]실 정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가 걸려 있으며 옆면에는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성구(聖句)가 써진 액자가 걸려있다. 평양신학원 교육관은 봉수교회 재건축 시 봉수교회 [[임시]]예배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봉수교회 [[성가대]] 연습장소로 사용된다. 평양신학원 도서관은 수천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이중에는 한국과 해외[[교포]] 기독교계에서 지원한 [[도서]]가 적지 않다. [[향린교회]] 전(前) 담임목사 홍근수 목사의 형 재미교포 홍동근 목사 역시 자신이 시무하던 선한사마리아인[[교회]]를 통해 수백 권의 도서를 [[기부|기증]]했으며, 홍동근 목사 사후 평양신학원은 홍 목사의 생전 기증 도서 및 그의 미망인 홍정자 여사가 추가로 기증한 도서를 정리하여 [[도서관]] 한 구석에 '홍동근 목사 기념서가'를 조성했다. 한국과 해외교포들의 기증 도서 외에 북한 목사들이 쓴 신학도서 역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홍 여사는 이 일을 위해 직접 방북하여 평양신학원 관계자들과 협조하기도 했[[http://ny.koreatimes.com/article/20021104/99424|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