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명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KIA 타이거즈]]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에 반해 야구에 입문하였다. 리틀야구의 주니어 팀에서 취미활동으로만 야구를 하다가 중학교 2학년이 될 무렵에 본격적인 야구선수로의 진로를 결심하여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 중학교 야구부에 문을 두드렸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입단 거부를 받아 들어가지 못했다. 이런 사정으로 중학교 성적이 없어 일반 고등학교 야구부로 들어갈 수 없었고 [[성지고등학교 야구부|성지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고교 시절 성적은 그냥 그랬으며 폭투가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성지고 야구부의 실력이 워낙 약했던 것을 감안하고[* 투수의 실력이 동일한 상황에서 야수들의 수비가 안 좋으면 땅볼 타구가 안타가 되는 비율이 늘어나서 피안타 개수가 늘어나며, 포수의 블로킹 실력이 안 좋으면 폭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비교적 빠른 성장속도로 최고 구속 145km를 찍은 것이 좋게 평가받은 건지, 2차 4라운드라는 기대보다 훨씬 높은 순번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하게 되었다.[* 조선명 본인은 아예 지명될 거란 생각도 안하고 그 시간 훈련을 하고있었다고 한다.] 이로써 조선명은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학력인정 고등학교]] 야구부 최초의 프로 지명자'''가 되었다.[* 프로야구 초창기 원년 멤버 중에는 천호상고(천호상업전수학교, 현 서울동산고등학교) 출신의 김용운, 숭의실고(현 숭의과학기술고등학교) 출신의 박석채 등 학력인정 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선수가 있었지만 이후 신인 지명을 통해 입단한 경우는 조선명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야구를 늦게 시작한 경우는 경험 부족으로 인해 대다수가 유급을 하는데, 조선명의 지명은 유급 없이 이뤄낸 결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조선명이 같은 년도의 드래프트 동기들보다 한 살이 많은 이유는 유급을 해서가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 자체를 1년 늦게 했기 때문이다. 입학 시기는 2006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