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왕조실톡/비판 (문단 편집) ==== 127화 ==== || [[파일:도르곤 초상화 비교.png]] || || (좌) [[조선왕조실톡]]의 [[도르곤]] | (우) 도르곤의 초상화 ||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1637년 당시, 예친왕(睿親王)[* [[청나라]]가 건국되면서 공적에 따라 화석친왕(和碩親王)에 봉해졌고 이후 예친왕이라는 칭호로 불려졌다. 실록 등에서는 [[도르곤]]을 구왕(九王)이라고 표기하는데, 이건 그가 9번째로 왕위를 받았던 것에 기반한 것이며 공적으로 인해 봉해진 예친왕이 아닌 순번의 의미가 큰 구왕으로 표기한 것은 청에 대한 조선 정부의 작은 보복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이었던 도르곤의 나이는 대략 25살 정도였다. 상당히 젊은 나이였지만 후대에 남은 초상화는 그의 섭정왕 말년에 그려진 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다소 이질감이 들 수는 있는 부분이긴 하다. 작가도 이러한 부분을 염려했는지 [[도르곤]]의 원래 초상화에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나름 상상해서 덧그렸는데[* 34화에서도 작가가 [[이성계|태조]]의 초상화에 덧대어 그린 적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그려진데다 즉위 초의 초상화와 제법 비슷하기도 했다. 무인 시절의 이성계 또한 제법 잘 나온 편.]예상보다 훨씬 조잡하게(...) 그려졌다는 문제가 생겼다. 차라리 다른 화의 인물이나 같은 대의 인물이지만 초상화가 하나도 남지 않은 [[용골대]]처럼 아예 상상해서 그리던가 아니면 어차피 역사적 인물이니까 나이가 맞지 않더라도 초상화를 그대로 쓰고 당시 나이 등을 만화에 표기해도 됐는데 굳이 덧대어 그린 것이다. 도르곤의 원본 초상화를 보면 알겠지만 도르곤은 말년에 제법 턱수염이 풍성한 편이었는데 덧그리는 과정에서 이 수염을 지우지도 않았고 원본 초상화와 달리 상당히 굵은 선을 사용한 탓에 얼굴 부분만 도드라져서 굉장히 어색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쌍꺼풀 수술]]이라도 했는지 눈도 커졌다-- 그리고 진짜 [[도르곤]]의 초상화는 황당하게도 [[인조]]의 죽음에 대해 다룬 145화에서 [[청나라]] 사신의 얼굴로 사용되었다. 더 어이없는 부분은 인조가 죽은 해는 1649년이고 도르곤이 사망한 건 그 다음 해인 1650년이라는 점이다. 즉, 굳이 도르곤의 얼굴을 가져다 놓고 청나라 사신으로 칭할 필요 없이 그냥 도르곤이라고 해도 되었다는 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