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왕조실톡/비판 (문단 편집) ==== 156화 ==== 비전문가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미 더 드러날 것도 없지만~~ [[인조]]가 44세의 늙은 나이에 15세의 어린 소녀 [[장렬왕후]] 조씨를 새 [[왕비]]로 맞았다고 깠는데,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의 여성은 14세 이상이면 혼인이 가능했다. 당시에는 집안이 가난하다던가 하는 등의 큰 하자가 없으면 10대 중반 즈음에 거의 혼인했다. 즉,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본인의 논리와 현대라는 틀에 사로잡힌 시각으로만 이해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오류는 작가의 차기작인 [[삼국지톡]]에서도 등장한다.] 인조처럼 자신보다 한참 어린 계비를 맞이한 조선 왕들은 또 있다. 51세에 19세의 [[인목왕후]] 김씨와 재혼한 [[하성군|선조]], 41세에 16세의 [[인원왕후]] 김씨와 재혼한 [[숙종(조선)|숙종]], 무려 '''66세'''에 15세의 [[정순왕후(조선 영조)|정순왕후 김씨]]와 재혼한 [[영조]], 33세에 13세의 [[순정효황후]] 윤씨와 재혼한 [[순종황제|순종]] 등이다. [[왕비]]는 단순히 왕의 배필이 아닌 내외명부를 총괄함은 물론, 왕의 사후 권력의 핵심중 하나였다. 그래서 [[내명부]]의 수장인 왕비의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었다. 극단적인 예로 [[계유정난]]의 원인 중 하나가, 왕([[이홍위|단종]])이 어리다는 것과 어린 왕의 뒤를 봐줄 대비나 대왕대비의 부재였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와 할머니 [[소헌왕후]] 심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고, 아버지 [[문종(조선)|문종]]과 할아버지 [[세종대왕|세종]]이 새 왕비를 책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