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왕조실톡/비판 (문단 편집) ==== 213화 ==== 조선의 무역 효자 상품이었던 [[홍삼]]에 대한 이야기. 해당 화에서는 마치 홍삼의 개발이 숙종-영조 시기에 홍삼 무역에 매진한 백성들이 손해를 감수하기 위해 개발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북송]]의 사신인 서긍(徐兢)[* 당시 북송은 [[휘종(송)|휘종]]이 통치하고 있었다.]이 집필한 고려에 대한 기행문인 [[고려도경|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23권 잡속(雜俗) 토산(土産) 편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人參之榦。特生,在在有之。春州者。最良。亦有生孰二等。生者。色白而虛。入藥則味全。然而涉夏。則損蠹。不若經湯釜而孰者。可久留。舊傳形匾者。謂麗人。以石壓去汁作煎。今詢之。非也。乃參之孰者。積垜而致爾。其作煎當自有法也。''' > (인삼의 줄기는 한 줄기로 나는데 어느 지방이고 있으나 춘주(春州)[* 오늘날의 [[강원도]] [[춘천]]을 가리킨다.] 것이 가장 좋다. 또 생삼(生蔘)과 숙삼(熟蔘) 2가지가 있는데 생삼은 빛이 희고 허(虛)하여 약에 넣으면 그 맛이 온전하나 여름을 지나면 좀이 먹으므로 쪄서 익혀 오래 둘 수 있는 것만 못하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그 모양이 평평한 것은 고려 사람이 돌로 이를 눌러 즙을 짜내고 삶는 때문이라 하였지만, 이제 물으니 그것이 아니다. 찐 삼의 뿌리를 포개서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그 달이는 데에도 마땅한 법이 있다.) 즉 홍삼 자체는 이미 고려 때부터 숙삼(熟蔘)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얘기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담배인삼공사]] 사이트에 들어가도 나오는 내용이다. [[https://www.kgc.co.kr/front/company/brandStory/ginsengStory/3301/encyclopediaForm.do?IDX=819&PC_YN=Y&curPageNo=1&STORY_TYPE=3301&searchFild=TITLE&searchKeywordText=&searchText=|해당링크]] 조선 시대에는 일반적인 삼(수삼), 쪄서 말리는 홍삼, 겉껍질을 벗기거나 혹은 그냥 말린 백삼(白參) 등 다양한 인삼에 대한 가공법이 존재했고, 그 중 조선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게 바로 백삼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백삼을 섭취하면 위통(胃痛)을 일으킨다는 잘못된 정보[* 물론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소화계통에 문제가 생겨 복통이나 소화불량, 설사가 생길 수 있고 한방에서는 이렇게 복통이나 급체가 발생한 경우에는 인삼의 복용을 금하고 있긴 하다. 또한 "차가운 것을 자주 마시면 몸이 쉽게 늙는다"는 중국 전통의학의 잘못된 관점으로 인해 당시 중국에서 인삼에 대한 과도한 남용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조선에서도 병만 났다 하면 인삼부터 챙겨 먹는 '인삼만능주의'가 유행하고 있었다.]가 나돌아다니는 바람에 인삼 무역에 타격을 받게 되었고, 그에 대한 대비로 기존에 존재한 홍삼의 개발이 더 활발해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