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인민혁명군 (문단 편집) == 상세 ==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과 관련하여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고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고 “모든 계급적 압박과 착취를 청산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1932년부터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이 무장투쟁 노선은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1930년 [[카륜회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김일성은 이 회의에서 무장투쟁 노선을 정립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회의에서 [[주체사상]]을 주장했다고 하는 등 후대에 윤색되고 소급된 내용들이 많다. [[http://www.kplibrary.com/nkterm/read.aspx?num=947|카륜회의에 관한 내용]]]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은 1978년부터 2017년까지 이 날짜를 창군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정규군 창건일인 2월 8일로 돌아갔다.] 김일성은 반일 인민유격대를 결성한 빨치산 대장이었는데 이 시기에는 만주에 여러 군벌, 마적, 독립군, 혁명군 등 다양한 무력집단이 군웅할거 하고 있던 시기였다. 1933년쯤 되면 이러한 단체들이 연합하기 시작하고 만주에 조선/중국 양국의 인민들의 "혁명적 지방주권기관"이자 "해방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신생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행정 능력은 산간 오지나 황무지까지 미치지 못했고 이를 이용하여 무력단체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자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일유격대를 결성했다는 것도 거짓말인데 그는 1931년부터 [[중국공산당]]이 창건한 '왕청 유격대'의 소대장에 불과한 부대원이었기 때문이다. [[https://www.dailynk.com/%EC%A1%B0%EC%84%A0%EC%9D%B8%EB%AF%BC%ED%98%81%EB%AA%85%EA%B5%B0-%EA%B9%80%EC%9D%BC%EC%84%B1%EC%9D%B4-%EA%B0%80%EA%B3%B5%ED%95%B4-%EB%A7%8C/|#]] [[북한]]은 "1934년에 이르러 김일성은 동만주의 반일 인민유격대와 남만주 반일유격대를 통합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1935년 5월에는 반일 민족 통일전선 본보인 조국광복회를 조직하고 그 회의 회장으로 추천되었다. 그리고 김일성은 만주 각지의 혁명적 무장세력을 통합하여 신기한 영도력을 발휘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1930년대 만주 지방에서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혁명군'과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가 소비에트 홍군이라는 명칭을 취소하고 다시 성립할 것을 지시했던 [[코민테른]]의 '1월 서한'에 따라 결성한 동북인민혁명군의 명칭을 조합해서 고안해낸 가공의 조직이다.[[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7008&num=103991|김일성이 가공해 만들어낸 군사조직]] 김일성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도 "중국 동북지방에서 활동할 때에는 동북항일연군이라고 하였고, 조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거나 조선에 나와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정황에 맞게 이름을 바꾸어 가며 활동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동북항일연군]]은 조선인민혁명군과는 전혀 다른 실존했던 군사조직이었다. 동북항일연군 제2군이 [[김일성]]이 이끌던 부대였으며 이때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투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혈맹]]'이라고 표현하는 중국조차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존재를 부인했다. 예컨대 1962년 4월 25일 [[평양]]에선 항일유격대 창설 30주년 기념행사를 전례 없이 대대적으로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 초청된 중공측 수뇌급 간부 펑전(彭眞)은 "'''중국 측은 김일성이 주도하여 조직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은 날조된 것이며, 김일성은 중국공산당의 지역조직에서 중간간부로서 어디까지나 중앙당의 지도 하에 행동했던 자로 규정했던 것이다.'''"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북한에서는 현재도 4월 25일을 조선인민군 창건기념일로 선정하여 매해마다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으며 한국 인터넷 백과사전에까지도 이를 버젓이 기재해 놓았다.[[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7008&num=103991|조선인민혁명군은 존재하지 않았다2]] 특히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내용 중에는 "[[양세봉]]의 [[조선 혁명군]]을 김일성이 흡수해서 대규모 부대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도 있는데 역시 거짓이다. 조선혁명군의 일부 대원이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그 산하 제2방면군장이 김일성이었음]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http://search.i815.or.kr/Degae/DegaeEbook.jsp?set_id=&bookid=051&pos=17095|#]] 그리고 북한에서 주장하는 [[조선 혁명군]]과 실제 사료에 등장하는 [[조선 혁명군]]은 다르다. 북한에선 [[조선인민군]]의 전신이 조선인민혁명군이라 주장하기 때문에 [[조선인민군가]]의 첫 소절이 "항일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다. [[조선인민군|자신들]]이 항일운동을 하던 자신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을 계승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거짓이며 조선인민군의 전신은 한인계 [[소련군]] 출신으로 구성된 [[보안대]]다. [[파일:조선인민혁명군 종대.jpg]] [[파일:조선인민혁명군.png]] 현재에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의 도구 중 하나로 이용되며 김정은 집권 후 열병식을 할 때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조선인민혁명군을 재현해 행진시킨다. 열병식[* 2012년, 2013년, 2015년, 2017년 열병식. 참고로 김정은 집권 후 열병식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집권기 당시의 열병식과는 다르게 조선인민혁명군 및 6.25 전쟁 당시의 복장을 한 열병부대를 행진시킨다. 그런데 항상 모든 열병식에 등판시키는 것은 아닌 건지 당창건 75주년 기념열병식부터는 등장하지 않다가 2022년 4월 진행된 열병식에서 다시 등장했다.]에서는 앞에서 세 번째 종대의 위치로 행진한다.[* 첫번째 종대는 김일성 초상기 종대, 두번째 종대는 김정일 초상기 종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