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족 (문단 편집) === [[귀속]] === 조선족은 스스로도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이들은 한국인과 국적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전체주의]]적인 중국의 교육하에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교육받으며 자란다. 한국어를 한다고 해서 이들에게 한국과 똑같은 국적 의식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게다가 '''중국은 다민족국가이지만 [[미국]]처럼 소수민족이 스스로 동화되기를 바라는 것[* 그마저도 [[화교]]나 [[히스패닉]]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이 아니고, 소수민족의 독립을 허용하는 순간 국가가 분열되는 전체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민족을 당당히 말하는 게 자유롭지 않다. 중국에서는 미국에서 하듯이 "나는 모국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면 당장 정부기관의 요주의 인물이 되는 것이 현실이며,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에 근무하고 있다면 당장 실업자'''가 될 것이다.--[[인체의 신비전|신비로워질]] 수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한인 축제가 열렸는데, [[한국계 미국인|현지에서 태어난 교포]]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걸어놓은 장면을 보고 중국 조선족이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지만 중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 행동을 하는 즉시 요주의 인물이 되고 끌려갈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현재 독립의식이 강해 강도 높은 탄압을 받고 있는 '''[[티베트족]]'''이나 '''[[위구르족]]'''이 뻔히 존재하기도 하고. 이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는 대부분 풀린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민족의식'''과 '''국적의식'''을 동일시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한국인(Korean)이다"라고 했을 때, 한국인들은 그 단어가 민족적인 의미로서의 한국인(Ethnic Korean)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 국적(Korean nationality)으로서의 한국인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구분하지 않고 둘을 혼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조선족들이 "나는 중국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민족의식과 국적의식을 구분하지 않는 대다수의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이 말의 의미를 혼동하여 "그럼 조선족들은 자기가 '''한민족 혈통'''임을 부정하는 건가?"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민족(ethnicity) 의식이지 국적(nationality) 의식이 아니다. [[한국계 미국인]] 2, 3세들이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말하며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조선족의 사고방식이 자연스레 이해가 될 것이다. 물론 한국인 앞에서 조선족이 중국인임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매우 부자연스럽고 한심하게 보이기 마련이지만,[* 특히 재중교포들과 재일교포들의 경우 중국과 일본이 6.25 전쟁, 일제강점기로 한국에 개입한 역사가 있고,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보니 똑같은 가치관을 가져도 재미교포들보다 취급이 좋지 못한 경향이 심하다.] 대부분의 [[재미동포]]들 2, 3세도 마찬가지 행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대부분의 다민족국가의 소수민족들의 행태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 [[메수트 외질]] 같은 [[터키계 독일인]] 축구선수들이 [[이중국적]]을 허용함에도 대부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 국가대표]]를 택하고 있다.[* 다만 외질은 독일 국가대표로는 활동할지언정 터키계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편에 속하며, 이런 외질의 행태에 독일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특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터키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논란이 되는 정치 행보들마저 옹호하는 태도가, 에르도안의 반민주적 행태를 비판하는 독일 정부 및 국민정서와 갈등을 빚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이중국적 선수들이나 이민자 출신 국가대표 선수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이유만으로 강하게 비판받지는 않으며, 그런 행동은 극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일례로 [[폴란드계 독일인]]인 [[루카스 포돌스키]] 역시 국적이 [[독일]]이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어 있으니 최선을 다한다 말할 뿐 폴란드계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편이지만, 이 이유로 비판 대상이 되진 않는다.][* 사실 외질의 사례는 [[터키계 독일인]]이 독일에서 생활하며 생긴 문제이므로, 조선족(=한국계 중국인)이 한국에서 받는 비판보단 중국에서 받는 비판, 혹은 [[화교]](=중국계 한국인)들의 대한민국 내 처우에 비교해야 한다. 단지 조선족이 부분적으로 중국인 - '한족'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 - 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딱히 이상한 건 아니라는 정도 얘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조선족이 특별히 줏대없고 민족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국가귀속의식과 민족귀속의식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도 한국인들은 민족과 국가가 하나인 '본토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보니 두 개념을 혼동하는 것이다. 반면 해외동포들은 자신이 속한 민족과 국가가 당연히 다르며 거기서 몇 대를 살면 그 국가가 자신의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해외동포들은 이러한 존재의 이중성을 갖고 태어나 자란다. 다만 [[한국 여권]]을 갖고 외국에 잠시 머무는 한국국적자는 물론 다르다. [[파일:서울 금천구 현대시장 팻말.jpg|width=300]] [* 유연한 필체로 "금천구"를 간체로 적은 점(한국 표준 표기로는 衿川'''區'''로 표기하지만, 중국의 간체자 표기로는 衿川'''区'''로 쓴다. 다만 우리도 필기시에는 区로 쓰는 경우도 많으니 区로 쓴다고 중국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区 표기는 일본어에서도 사용되기에 더더욱 그렇다.(ex, 도쿄도 치요다구(東(东)京都 千代田区)중국에서 간체자 만들 때 기존에 쓰던 약자나, 속자로 만든경우도 많다.) 현대 한국어의 격식체인 해요체와 어미를 혼동하는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문구를 적은 사람은 조선족일 가능성이 높다.] 소수지만 한국인 못지않은 민족의식을 보여주는 조선족들도 있으며, 스스로 중국인을 자처하는 조선족이라도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중국 한족들은 "조선족은 [[한류]]나 한국을 자랑하니 아니꼽다"고 불평'''하기도 하니, 모든 조선족이 민족의식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한 일반화다. 지명광 씨처럼 아예 중공에 대항하다가 입국금지를 당한 사례가 그나마 한국에 알려져 있는데, 이런 사람은 조선족을 싫어하던 한국인도 호의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Htw0YUUkUE|#]] 그 외에 일부 조선족들은 스스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한국인보다 더 강한 순혈 의식을 보여주기도 하며, 노총각/노처녀로 남는 한이 있어도 한족과는 결혼도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 1970년대까지 조선족 내에서도 남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천시를 받는 분위기였고, 대체로 북부 지역 출신들이 더 우대받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뭐, 중국에서 정책적으로 남한 출신과 북한 출신을 갈라놓았다니 지역감정을 조장한 정책을 편 건 아니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남한은 중국의 적대국이었던 데 반해 북한은 중국의 우방국이면서도 가까웠기도 했고, 교류도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졌으니까.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북한이 급속히 빈곤해지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남부 지역 출신자들은 남한에 친척이 있는 경우가 많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일자리를 상당히 수월하게 구해서 기회를 잡을 수 있던 데 반해, 북부 지역 출신자들은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고, 오히려 북한에 있는 친척들에게 먹을 걸 부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불리했다고. 그래서 당시에[* 정확하게는 1990년대 초반부터 나온 말이기는 하다. 남한이 북한을 완전히 찍어누른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북한의 경제는 1970년대부터 둔화 기미가 보이다 [[북한의 80년대 3대 실정|80년대 삽질]]을 거쳐 완전히 무너졌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오면서 역전을 확정지었다. 한국은 6.25 전쟁 이후 6-7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보다 가난했으나 한강의 기적 이후인 80년대부터 고도성장으로 다가갔다. 90년대 후반에 IMF가 오긴 했으나 이미 극복하고 경제강국으로 올라섰다.] "남조선에 친척이 있으면 부자가 되고, 북조선에 친척이 있으면 거지가 된다"는 말이 나왔다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